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440
한자 廣山祠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동송동길 9-71[송산동 83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7년 - 광산사 중수
현 소재지 광산사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동송동길 9-71[송산동 836]지도보기
성격 사우
양식 한식골기와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나주오씨
관리자 나주오씨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사우.

[개설]

광산사는 조선 중기 홍문관 우의정을 지낸 지족암 오겸(吳謙)[1496~1582]을 제향하기 위한 사우이다. 송산동 세동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하며 장방형의 대지에 전통기와 담장이고, 문간채와 사당 본채가 있다. 부지 인근에는 강당격인 금하재(錦霞齊)가 자리한다. 오겸은 오신중의 증손이며 조부는 오자치이고 오세훈이 부친이다. 1522년에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564년 좌찬성에 올라 왕으로부터 궤장(几杖)을 내려받고, 후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지춘추관사가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우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동송동길 9-71[송산동 836]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 사우 건물은 영각 상량문의 '숭정기원후오갑정사...'와 문간채 상량문 '임신후사십육년정사...'로 볼 때 1917년에 중수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한식골기와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황]

광산사의 사당 본채에는 오겸의 영정을 모시고 있고, 문간채 정면에 광산사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광산사는 지족암 오겸을 배향하는 기념적 장소로 일제강점기에 중건되었으나 사우 건축의 전통적 규범에 따른 공간 배치와 의장 형식을 잘 갖추고 있으며, 사우의 위엄과 기품이 잘 남아 있어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광산구사』(광산구사 편찬위원회, 201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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