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동 입석 비석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398
한자 山水洞立石碑石群
이칭/별칭 민목사불망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210-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3년연표보기 - 산수동 입석 비석군 건립
현 소재지 산수동 입석 비석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210-2 지도보기
성격 비석군
양식 석비
관련 인물 민치성|이지연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138㎝[높이]|130㎝[너비]|17㎝[두께]
관리자 입석마을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입석마을에 있는 선정비.

[개설]

한 바위면에 구획을 하고 나주목사(羅州牧使) 2인의 비를 새긴 선정비(善政碑)와 유애비(遺愛碑)이다. 민치성(閔致成)은 1820년(순조 20) 4월 2일 나주목에 도임하여 1822년(순조 22) 7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지연(李止淵)은 1830년(순조 30) 10월 1일에 도임하여 1831년(순조 31) 1월까지 재임하다가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산수동은 조선시대 때 나주목에 속한 지역이었지만, 행정구역 변동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편입되었다.

[건립 경위]

나주목사를 역임한 민치성과 이지연의 선정을 기려 1833년(순조 33)에 세웠다.

[위치]

산수동 입석마을 오른쪽 황룡강 가에 마을 주민들의 휴식 정자인 영춘정 옆에 있다.

[형태]

높이 138㎝, 너비 130㎝, 두께 17㎝의 선돌에 앞면만 다듬어서 구획을 하고 새겼다.

[금석문]

앞면에 목사민후치성선정불망비(牧使閔侯致成善政不忘碑)와 목사이후지연청덕유애비(牧使李侯止淵淸德遺愛碑)라 새겼다. 뒷면에 오직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선정을 베푼 두 목사를 기리기 위해 석비를 세웠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지방관의 선정을 기려 세운 비로, 제도사와 향촌사적 의미가 있다. 또한 지방행정의 변천사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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