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062
한자 石文山|石門山
영어공식명칭 Seongmunsan Mountain
이칭/별칭 골몰,히여치(希余峙),하양산(下揚山)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현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석문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해당 지역 소재지 석문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지도보기
성격
높이 269m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산.

[명칭 유래]

『광주지』[1964]에 석문산(石門山)은 신선봉(神仙峰)에서 내려온다고 하였다. 전라남도 장성군 수연산(秀蓮山)으로부터 칠봉산(七峯山)으로 내려와 그 중 삼룡산(三龍山)에 이르러 다시 염불산(念佛山)과 신선봉으로 갈라져 신선봉이 석문산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광산구 도야산 아래 동촌마을 뒷등에 ‘석문(石門)’이란 지명이 있는데 ‘골몰’이라고도 부른다. 석문제[석문저수지] 북서쪽에 북문바위가 있고 정면에 남문바위가 있다. 남문바위 밑에 100m 깊이의 ‘십리굴’이 있는데, 십리굴에서 불을 피우면 2㎞ 떨어진 평동 소재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북문바위와 남문바위를 큰 석문산, 작은 석문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두 바위는 마치 커다란 성벽의 바위문 같아 보이므로 산 이름을 ‘석문산’이라 부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

흑운모화강암 주위에 규암이 분포하여 기암이 줄지어 솟아 있는데 맑은 물이 흐르므로 돌들이 좋았다고 한다. 석문산 동남쪽 아래 도야마을 어귀에 있는 선돌의 '히여치하양산지동(希余峙下揚山之洞)'이라는 음각처럼, 예전 민둥산 시절에는 하얀 돌들의 석문산이 온통 하얗게[히옇게] 보였을 것이므로 히여치(希余峙)하양산(下揚山)이라는 이름이 생겼을 것이다. 석문저수지에 비친 어귀에는 돌로 문을 만들어 달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지금은 많은 바위가 사라졌다고 한다. 석문산 정상의 이름은 부처봉이고, 석문 사이의 길을 따라 있는 북쪽 골짜기를 석문안골이라고 부른다.

[자연환경]

석문산 북쪽으로는 사랑산과 오운제 사이에 광암마을이 있으며,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감도산~뒷산~쓰래산~용진산으로 능선이 연결된다. 석문산 북동쪽으로는 복룡산, 어등산이 있으며, 남서쪽으로 병풍산 등이 있고, 남쪽으로 나지막한 야산과 들판이 펼쳐진다. 석문산 서쪽 산록에 있는 농로를 사이에 두고 석문의 규모에 따라 서쪽에는 크고 웅장하여 큰석문산, 동쪽에는 규모가 작아 작은석문산으로 부르는 암벽이 줄지어 솟아 있다. 석문산의 동쪽에는 희여치(希汝峙)가 있는데, 1900년대 초까지는 석문산의 동서 양쪽에 있는 석문길과 희여치 고갯길이 본량면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 중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전혀 이용되지 않는다.

[현황]

석문산 서쪽 석문저수지의 북쪽에 관음정사(觀音精寺)가 있으며, 석문산 남쪽 동촌마을에는 화암서원(花巖書院)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왕건이 나주를 점령한 후 개경으로 돌아갈 때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광산구석문산, 어등산, 대명산, 용진산 등은 호남의병들의 격전지로, 호남 서남부 지역 의병사(義兵史)를 볼 수 있다. 1906년에는 광산구 출신인 한말 의병장 오상용이 석문산에서 전투를 하여 일본군을 사살하였다. 석문산은 마치 성처럼 생겨서 해산(海山) 전수용(全垂鏞)[1879~1910], 죽파(竹坡) 오성술(吳成述)[1884~1910] 등이 자주 주둔하며 1908년 7월~8월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이다. 석문동천(石門洞天)에는 석문공(石門公) 오이익(吳以翼)의 재실인 빙설당(氷雪堂) 등이 남아 있다. 빙설당은 1910년 망국 이후 오준선이 5년 동안 강학 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이다. 의병들의 치열한 전장터인 사호치(沙湖峙)로 넘는 길목에는 용진동천의 상원사(上元寺)[현 용진정사(湧珍精舍)]가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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