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152
한자 錦洞
영어공식명칭 Geum-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광주부 금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전라남도 광주부 금동에서 전라남도 광주시 금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전라남도 광주시 금동에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금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금동에서 광주직할시 동구 금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광주직할시 동구 금동에서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면적 1.41㎢
가구수 2,245가구
인구[남/여] 3,085명[남자 1,650명|여자 1,435명]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금동(錦洞)은 북쪽으로 동구 광산동, 동쪽으로 광산동 일부, 서석동 일부, 남쪽으로 남구 양림동 일부, 동구 학동 일부, 서쪽으로 남구 양림동 일부와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금동의 지명은 조선 후기 광주군(光州郡) 부동방면(不動坊面)에 속했던 지역인 금계리(錦溪里)에서 유래되었다.

[형성 및 변천]

금동은 조선시대 금계리(錦溪里)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인 1914년 광주군 광주면 금정과 금계리가 되었고, 1930년 금정과 금계리가 금정이 되었다. 1946년 금정은 1구와 2구로 나뉘어 1구는 금류동(金流洞), 2구는 금계동(金溪洞)으로 개칭되었다가 1947년 금동으로 통합되었다. 1973년 구제 실시로 동구에 편입되었다. 이후 1986년과 1995년 광주시의 직할시, 광역시 승격을 거쳐 지금의 금동이 되었다. 1998년 소규모 동 통·폐합으로 행정동인 서남동의 관할이 되었다.

[자연환경]

금동은 남서쪽으로 광주천과 접하고 있으며, 인쇄 및 출판업체를 비롯한 상업지구로 채워져 있다. 매년 장마로 인해 강물이 범람하는 피해가 잦아 인공제방을 축조하여 주거지와 상업지구로서의 환경을 지니고 있다.

[현황]

2021년 10월 기준 현재 면적은 1.41㎢이며, 인구는 2,245가구에 총 3,085명으로 남자가 1,650명, 여자가 1,435명이다. 금동은 법정동인 광산동, 불로동, 남동, 서석동, 장동, 학동과 함께 행정동인 서남동에 속해 있다.

금동은 인쇄사업체와 유통사업체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 1943년에 열린 금동시장이 있다. 아시아음식문화거리와 인접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2021년 12월 문화전당역에 오피스텔이 완공 예정으로 상업지구와 주택지구로서의 복합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광주시사』(광주직할시사편찬위원회, 1992)
  • 『한국지명유래집』-전라·제주편(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0)
  • 광주광역시 동구청(http://www.donggu.kr/index.es?sid=a1)
  • 광주광역시청(http://www.gwangju.go.kr)
  • 두산백과(http://www.doopedia.co.k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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