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요강다리와 옥쇄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721
한자 -玉碎-
영어의미역 Yogang Bridge and Okswaegol Tow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신정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윤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탄생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신부|옥동자
관련지명 요강다리|옥쇄골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요강을 떨어뜨린 다리|이씨 가문 중시조가 탄생한 마을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신정리 서정마을에서 요강다리와 옥새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요강다리와 옥쇄골」은 신행을 가던 신부가 다리 밑으로 요강을 떨어뜨렸다는 요강다리의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신부가 옥쇄골에서 산고 끝에 귀한 옥동자를 낳았고, 후에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하는 이씨 가문 중시조 탄생유래담이기도 하다.

[채록/수집상황]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전라북도 문화관광정보[http://www.gojb.net]의 전통문화 항목에 실려 있는데, 이는 김제시 문화관광과에서 제공한 정보이다.

[내용]

고려 말엽 풍습으로 혼인을 하면 신부는 친정에 일 년간 머물다가 신랑 집으로 신행을 했다. 이씨(李氏) 신랑 집으로 신행을 가던 신부가 있었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던 이 신부가 갑자기 다리 위에서 산통이 심하게 오자 타고 가던 가마에 실었던 요강이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신부가 진통이 심해서 가마 위에서 야단법석 하는 것을 짐작한 하인들은 더욱 더 걸음을 빨리 하여 다리를 건너 지금의 옥쇄골에 도착하여 신부를 쉬게 했다.

얼마 후 신부는 무사히 옥동자를 낳았다. 그때 낳은 옥동자가 잘 자라서 이씨 가문의 중시조가 되었고, 조선을 창업할 때도 큰 공을 세웠다. 그 후로 신행을 가던 신부가 다리 위에서 출산 기미로 진통이 왔을 때 요강을 떨어뜨렸던 것을 풍자하여 다리 이름을 요강다리라 하였고, 그 때 태어난 옥동자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해서 이 마을을 옥새골[玉璽골] 또는 옥쇄골[玉碎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요강다리와 옥쇄골」의 주요 모티프는 ‘요강을 떨어뜨린 다리’, ‘이씨 가문 중시조가 탄생한 마을’ 등이다. 신행을 가던 신부가 다리 위에서 요강을 떨어뜨릴 정도로 심한 산통이 왔지만 옥쇄골에서 옥동자를 낳아 이씨 가문의 중시조가 되었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하는 요강다리 지명유래담이자 이씨 가문 중시조 탄생유래담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