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2년에 제작된 경기도 가평군을 그린 지도. 『1872년 지방지도』 「가평군지도」 는 1871년(고종 8) 읍지도 등상령(謄上令)에 따라 1872년 가평군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지도이다. 지도의 크기는 가로 25.4㎝, 세로 35.8㎝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1872년...
-
1899년에 편찬된 경기도 가평군의 읍지. 『가평군읍지(加平郡邑誌)』는 1899년(광무 3) 중앙 정부에서 각 지방의 읍지를 작성하여 보내라는 읍지 상송령에 따라 가평군에서 편찬하였다. 『가평군읍지』[1899]는 필사본 2책으로 간행되었다. 표제는 ‘광무3년기해5월일가평군읍지성책(光武三年己亥五月日加平郡邑誌成冊)’으로 되어 있어 『가평군읍지성책』으...
-
1871년에 편찬된 『경기읍지』에 수록된 경기도 가평군의 읍지. 『경기읍지(京畿邑誌)』는 1871년(고종 8)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에 따라 경기도 관내 각 고을의 읍지가 합철되어 제작되었다. 「가평읍지(加平邑誌)」는 6책 중 2책에 수록되어 있다. 『경기읍지』는 필사본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0.1㎝, 세로 30.0㎝이다. 서울대학교...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소재한 가평초등학교의 전신. 가릉학교는 가평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 1907년 6월 25일 향교에서 운영하던 명륜당 앞에 수업연한 4년에 4개 학급, 100여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1910년 4월 1일 교명을 가평공립보통학교로 개명하여 인가를 받았으며, 1938년 3월 31일 가평공립명륜심상소학교, 1941년 4월 1일 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남도진의 사당. 가평별묘는 조선 후기 학자 남도진(南道振)[1674~1735]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남도진의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자는 중옥(仲玉), 호는 농환재(弄丸齋)이다. 남도진은 벼슬을 마다하고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아래 은거하다 일생을 마쳤다. 문집으로 『계몽차기(啓蒙箚記)』, 『예서차기(禮書箚記...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정미의병으로 활동한 의병장. 강기동(姜基東)[1884~1911]은 경기도 장단(長湍) 출신이다. 장단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하던 중, 1907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군인을 비롯하여 뜻있는 의인들이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장단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병 투쟁을 전개하다 체포 당하거나 사살...
-
1907년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강백룡(姜白龍)의 아버지는 1907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서 영좌로 근무하면서 의병장 이두응(李斗應)의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강백룡 아버지는 이두응의 집에서 만든 의병 의복 100여벌을 의병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의복을 옮기는 도중 관군에게 적발되어 손에 총상을 입었으나 끝까지 의복을 전달하여 임무를 수행했다....
-
대한제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장. 강윤희(姜允熙)[1868~1909]의 본관은 진주이며, 아버지는 강필형(姜苾馨)이다. 강윤희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김동필(金東弼)·경현수(慶賢洙) 등과 함께 조약에 협조한 을사오적의 처단과 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며, 각국의 공사들에게 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경반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장중휘·장우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경반리 인동 장씨가 정려는 조선 후기 효자 장중휘(張仲輝)[1690~1764]와 장우태(張羽泰)[1724~1802]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이다. 장중휘와 장우태는 부자 관계로 두 명 모두 효자로 유명하였다. 가평 지역의 유생들이 장중휘·장우태 부자의 효행을 조정에 알...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경달(金敬達)[1849~1896]은 1849년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팔미리 70[현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에서 태어났다. 김경달은 춘천부의 포군으로, 평소 ‘김효자’로 불릴 정도로 효도와 우애가 극진한 것이 널리 알려졌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제의 내정 간섭으로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순선(金順先)[1806~1907]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06년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에서 태어났다. 김순선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발표 등으로 발생한 을미의병에 의병장으로 가담하였다. 김순선은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 체결, 군대 해산 등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도 참여하였...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영배(金永培)의 본관은 김해이고, 경기도 가평군 상면 출신이다. 가평군 상면 연하리 출신의 김순선과는 사돈지간이다. 김영배는 1907년에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칠조약의 체결 및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 가담하였다. 김영배는 박래병(朴來秉)의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일...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지봉은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출신으로 안반진 나룻배의 사공이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칠조약의 체결,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 참여하였다. 안반진 나루는 현재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있는 달전리 나루로, 조선시대에는 5일과 10일에 열리는 가평장에 주민들을 운송하는 주요...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김춘수(金春洙)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명으로는 병수(柄洙)를 사용하였다. 1898년부터 의병활동에 투신한 김춘수는 1907년 소모대장 이범구(李範九) 및 의병 800명과 함께 경기도 가평·강원도 홍천·양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김춘수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고, 한일신협약(韓日...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나봉산(羅奉山)[1860~1910]의 본관은 나주이며, 본명은 나숙식(羅肅植). 자는 공서(公瑞)이다. 아버지는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을 지낸 나항순(羅恒淳)이며, 부인은 김해 김씨 김구심(金龜心)의 딸이다. 1860년 5월 16일 가평군 하면(下面) 망동(望洞)에서 태어났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인하여 각지에서...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에 있던 개항기 효부 충주 지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미사리 효부정문은 남양 홍씨(南陽 洪氏) 가문으로 시집온 충주 지씨(忠州 池氏)에게 내려진 정문이다. 충주 지씨는 중병에 걸린 시아버지를 10여 년간 대소변을 받아내며 봉양하였다고 한다. 병에 걸린 시아버지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눈 속에서 헤매며 꿩을 잡아 왔다는 이야기...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개항기 문신 민영환을 기리기 위해 새긴 암각자. 민영환 암각자는 한자로 ‘민영환(閔泳煥)’이라 새겨진 암각자이다. 1906년 내시부 지사(知事) 나세환(羅世煥) 등 12명이 민영환의 뜻을 기리며 새겼다고 한다. 민영환[1861~1905], 조병세(趙秉世)[1827~1905], 최익현(崔益鉉)[1833~1906]의 정신을 기리...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박문익(朴文翼)은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박문익은 일찍부터 사서(四書)를 공부하고 학문을 배워 서당 훈장을 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斷髮令)의 시행으로 인해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1896년 춘천의병에 합류하여 활동한 이충응(李忠應) 의병장이 같은 해 2...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활동한 의병. 박현성(朴賢成)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斷髮令)이 시행되자 이로 인해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이충응(李忠應)은 이러한 상황에서 1896년 1월 20일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春川義兵)에 합류하여 아장(亞將)으로 활동하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리에 있었던 천주교 공소. 백둔리 공소는 1909년부터 1917년까지 8년 동안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리에서 운영되었다. 천주교를 믿는 원주원씨 후손인 주한과 주천 형제가 경기도 가평군 하면[현조종면] 신상리에서 백둔리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백둔리 공소에는 원씨 일가와 함께 박씨, 김씨 일가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그...
-
1896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보납산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시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일본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쳐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표명하고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토벌대를 파견하여 사전 봉쇄를 기도하여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가평 인접 지역인 춘천과 화천 등지에서 1896년 1월 20일 의병이...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 일대에 위치하였던 천주교 공소. 사그막 공소는 1901~1902년에 작성된 강원도 원주 본당의 드브레(Devred)[1877~1926, 한국명: 兪世俊] 신부의 연말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사그막 공소는 본당교회가 없던 가평 지역에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세운 공동 예배소이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성익현(成益鉉)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익현은 1895년 의병에 가담하고 이듬해 1896년 가평 벌업산[寶納山]전투에서 싸우다가 패하여 춘천·홍천 등지에서 이의신(李宜愼)의 부하가 되어 활동하였다. 1907년에는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으로서 정경태(鄭敬泰) 등과 더불어 200여 명의 군...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신관휴(申觀休)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신관휴는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진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 등을 벌일 때, 신관휴는 신재욱(申在旭),...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 신석범(申錫範)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재현(申在玄)이며, 아들은 독립운동가 신숙(申肅)이다. 1895년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로 인해 을미의병이 봉기하였다. 가평 지역의 이충응(李忠應)은 1896년 1월 20일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春川義兵)에 합류하여 아장(亞將)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신재욱(申(在旭)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사현(士賢), 이명(異名)은 신경홍(申敬弘)이다. 아버지는 신광임(申光壬)으로, 1828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서 태어났다. 신재욱은 어려서부터 사냥을 좋아하여 포수가 되었고, 의병을 위하여 큰 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1895년의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민심이 크게 동요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신재희(申在熹)[1850~1895]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54이다. 이명(異名)은 신재가(申在嘉)이다. 신재희는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895년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재직 중이던 낭천현감 관직을 버리고 조카사위 이충응(李忠...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신태성(申泰成)은 1885년 가평군 서면에서 태어났다. 신태성(申泰成)은 1907년 일본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의 체결, 군대 해산 등을 계기로 정미의병이 발생하자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대한제국 군인이었던 강기동(姜基東)[1884~1911]이 1909년 의병활동을 시작하자 신태성은 강기동과 함께 가담...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심능욱(沈能昱)은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진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 등을 벌일 때, 신관휴(申觀休), 신재욱(申在旭) 등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여 항전하였지만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에 있는 개항기 열부 나주 정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열부 나주 정씨는 남편인 조원승(曺元承)이 병들어 눕자 밤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올렸으며, 병에 좋다는 약을 구하여 간병하였다. 하지만 정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1890년 6월 28일 사망하였다. 정씨는 당시 선비 집안의 풍습을 따라 구십일장을 치렀는데, 식음을 전폐하고...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유중락(柳重洛)[1842~1922]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사원(士原), 호는 오천(午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원(柳瑗), 할아버지는 유영택(柳榮澤), 아버지는 유호(柳昈)이며,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 박헌규(朴憲圭)의 딸이다. 형은 유중렴(柳重濂)이다. 18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유중락은 유년...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1896년 이후 가평의 의병활동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인근 지역인 춘천 및 이천 의병과 연합하여 펼쳐나갔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이어 단발령까지 시행되자 전국의 의병항쟁은 본격화되었다. 의병항쟁 초기에 경기도 북동부 지역의 가평군은 춘천·화천과 함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가평의 의병은 1896년 1월...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이관구(李觀九)[1852~1922]의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직(仕直)이다. 아버지는 이국용(李國用), 부인은 영암 박씨이다. 이관구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에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한 이충응(李忠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 의병. 이근화(李近和)는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본관과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시행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본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치기 위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근화는 1896년 춘천과 가평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충응(李忠應)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이근화는 1896년 2월 보납산에 진을 치...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이두응(李斗應)의 본관은 전주이다.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기식(李杞植)이다. 1872년 12월 3일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서 태어났다. 이두응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발표되자 이에 반발한 양반유생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896년 가평군에서 신재희(申在熹)...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이범구(李範九)의 본관은 우봉(牛峰)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겸 오위장 이상용(李商用)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충응(李忠應)은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의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하였다. 이범구는 이충응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고종의 강제...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진응(李晋應)[1847~1896]의 본관은 전주, 자는 경재(敬哉), 호는 직헌(直軒)이다.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9남인 경창군(慶昌君) 이주(李珘)의 후손이며, 을미의병장 습재 이소응(李昭應)의 종형(從兄)이다. 강원도 춘천군 남면 하방곡리 출신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춘천에...
-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하천리에 있는 개항기 가평군수 이철연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철연(李喆淵)은 1868년 5월에 가평군수에 부임하였고, 1870년 6월에 원주판관(原州判官)으로 옮겨갔다. 이철연 영세불망비는 비문에 의하면 ‘경오삼월(庚午三月)’에 세워졌는데, 경오년은 1870년이다. 즉, 이철연이 다음 임지로 옮기기 전에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장. 이충응(李忠應)[1856~1896]의 아버지는 이인화(李寅和)이며, 1856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신재조(申在朝)의 딸이다. 이충응(李忠應)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발표되자 분개하여 처삼촌인 신재희(申在熹)와 함께 거의(擧義)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신재희(申在熹), 신경홍(申敬弘) 등은...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임찬옥(任燦玉)은 1895년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조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병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를 벌일 때 함께 참가하여 항전하였다. 그러나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하여 패하면서 가평 북면 방향으로 일시 이...
-
1890년대 경기도 가평 지역의 유일한 천주교 공동체였던 천주교 공소. 전패 공소의 실제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춘천 죽림동 본당 70년사』에서 제9대 죽림동 본당 주임 사제였던 신성우[1893~1978] 신부가 1983년 3월 10일 가평에서 출생한 기록은 당시 가평에 천주교인들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간접적인 증거 자료가 되고 있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정문위(鄭文緯)[1851~1896]의 본관은 경주, 자는 경천(敬天), 호는 화남(華南)·화남재(華南齋)이다. 정해종(鄭海宗)의 3남으로, 1851년 가평군 북면 남종리에서 태어났다. 정문위는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를 계기로 이충응(李忠應), 신재희(申在熹), 신경홍(申敬弘) 등이 가평에서 거의(擧義)하자...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정응수(鄭應壽)의 본관은 봉화이며 자는 헌기(憲箕)이다. 아버지는 정동혁(鄭東爀)으로 1855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정응수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에서 이충응(李忠應) 등이 의병을 일으키자...
-
경기도 가평군 조종천 변에 있었던 천주교 공소, 1909년 말 사목(司牧) 보고서에 나오는 천주교 공소. 조종안 공소는 1909년 말 사목(司牧) 보고서에 언급되어 있다. ‘조종안’이라는 명칭은 가평군 상면과 하면에 걸쳐 있는 조종천 변의 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불리어왔다. 처음 천주교 신자가 나온 곳은 가평군 하면 신하리 샛말이라고 한다. 신하리에서 11대째...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지염구(池濂求)의 본관은 충주, 자는 덕성(德成)이며 일명 홍렴(洪濂)이라고도 한다. 이버지는 지기현(璣鉉)이며, 1857년 가평군 상면 율길리에서 태어났다. 지염구는 1907년 박래병 의병부대 일원으로 가평군 상면과 하면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11월 가평군 하면 상대리 조정룡(趙正龍)의 집에...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평에서 활동한 의병으로 한일합방인 1910년에 일제의 단속을 피해 최영순(崔永淳)으로 개명하였다. 1854년 7월 22일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현재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을미사변에 반발하여 이듬해 신재희, 이충응 등이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포수였던 최재순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에 위치한 가평 본당 상색 공소의 옛 이름. 포회촌 공소에서 ‘포회촌’은 개울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의 지명이다. 실제로 가평읍 상색리의 상색천이 마을 앞으로 모여 흘러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포회촌 공소는 백둔리·서파·조종안 공소와 함께 1909년부터 본당별 교세 통계표에 나타나는 공소이다. 그러나 공소 설립 시기는 분명하게 나...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하상태(河相泰)[1868~1909]의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자는 치영이다. 하상태(河相兌), 하상태(河尙泰), 하성태(河聖泰)라고도 불리었다. 하상태의 증조할아버지는 병조참판 하상문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하수홍(河受弘)이다. 1868년 11월 23일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 495에서 태어났다. 1906년 가평군수가...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일제는 1907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정미의병이 일어났는데, 무명 장사를 하던 한경수(韓景秀)도 이에 참여하였다. 한경수는 1907년 음력 10월 경 허위(許蔿)의 친형인 허훈(許勳)의 휘하에서 들어가 십 수...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를 계기로 전국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 신재희(申在熹), 신재욱(申在旭) 등이 의병을 일으키자 한원교(韓元敎)는 이에 동참하였다. 이충응 의진이 관군을 맞이하여 가평군 보납산에서 전투를 벌이자 한원교도 함께 항전하였다. 그러나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하여 패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황순일(黃順一)은 경기도 양주군 고주내면(古洲內面) 출신이다. 황순일은 대한제국 군인으로 양주군 관포군(官砲軍) 1부장이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되고, 이후 정미칠조약의 체결과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발하여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황순일은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부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