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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5259
한자
영어공식명칭 Poem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릉
시대 현대
집필자 이홍섭

[정의]

강릉 출신의 시인이나, 강릉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시인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감흥이나 사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 장르.

[일제 강점기의 강릉 시단]

일제 강점기에 강릉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은 강릉 사천면 노동리에서 출생한 김동명[1900~1968]이다. 1923년 『개벽』을 통해 등단한 김동명은 『나의 거문고』, 『파초』, 『하늘』, 『진주만』, 『삼팔선』 등의 시집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비애를 노래했다. 목가적이고 전원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의 시세계는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대 상황을 비판하는 경향으로 나아갔으며, 절필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저항했다. 광복 이후에는 해방 공간의 혼란과 북한 사회의 실태를 비판하는 시들을 발표하였으며, 전쟁 이후에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문단 활동을 하지 못했다. 1900년생인 김동명은 강릉의 현대 문학을 연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언론계에 투신했던 박기원[1908~1978]은 1929년 『민성』에 「실향」을 발표하고, 같은 해 『문예공론』에 시 「홍수」가 입선하여 등단했다. 1938년 첫 시집 『호심의 침묵』을 출간했으나 일본 경찰에 압수되어 현재 전하지 않고 있으며, 1953년 부산 피난기에 최재형과 공동 시집 『한화집(寒火集)』[현대사]을, 1969년 단독 시집 『송죽매란(松竹梅蘭)』[삼일각]을 각각 펴냈다. 그의 시는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생명과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했다. 언론인 출신답게 시 에서 강직함이 묻어나오고, 역사와 설화에 기반한 시들을 많이 남겼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으며, '청포도(靑葡萄)' 동인으로 활동했던 시인 함혜련을 1959년 『문예』를 통해 등단시키기도 했다. 박기원김동명과 '청포도' 동인 사이의 시대적 공백기를 메워주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강릉 출신으로 중국 용정에서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심연수[1918~1945]는 윤동주, 이육사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빛낸 저항 시인이자, 민족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 『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사료 전집』 출간으로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그의 시들은 식민지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시인의 면모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심연수의 시 세계는 현재에도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1950년대 강릉 시단]

한국 전쟁기인 1952~1953년, 강원도 최초의 시 동인지 『청포도』가 간행되어 암울했던 전쟁의 와중에서도 시의 꽃이 피어났다. 황금찬, 최인희, 이인수, 김유진, 함혜련 등이 참여한 시 동인지 『청포도』는 1952년 임시 수도 부산의 고려 인쇄사에서 1집이 간행되었고, 2집은 1953년 박목월 시인이 운영하던 대구의 창조사에서 간행되었다. '청포도' 동인들은 이후 활발한 활동을 통해 강릉 현대 시단의 형성에 초석을 놓았으며, 후배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낭만적 서정시를 쓴 황금찬, 불교 사상이 가미된 동양적 서정시를 쓴 최인희, 시의 외형적 형태에 관심이 많았던 이인수, 자연의 신비를 서정적으로 노래한 김유진, 거침없는 활달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한 함혜련 등은 각자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보였다. 이 시기 강릉 학생 문단의 활동은 전국적으로도 두드러졌다. 1952년 강릉 사범 학교 학생과 동문들이 참여한 문예지 『보리밭』이 간행되었으며, 강릉 사범 학교의 『사도(師道)』를 비롯하여 강릉 농업 고등학교의 『영동(嶺東)』, 강릉 상업 고등학교의 『대관령(大關嶺)』, 강릉 여자 고등학교의 『화부산(花浮山)』 등 많은 교지가 만들어졌다. 이들 교지에서 활동한 학생 문사들은 훗날 강릉 시단의 주역들로 성장하였다. 강릉 사범 학교에서 황금찬, 최인희의 영향을 받은 신봉승, 삼척에서 태어나 강릉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강원도의 정서를 시로 노래한 이성교, 고향 주문진 정서를 육화한 강우식 등이 이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1970년대 강릉 시단]

'청포도' 동인들의 영향과 학생 문단의 성장에 힘입어 1959년 '관동 문학회'가 창립되었다. 윤명, 원영동, 신봉승, 이영섭, 최명길, 박명자, 이충희 등 20여 명의 문인들이 참여한 '관동 문학회'는 한동안 미미한 활동을 보이다가 1980년대 들어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88년 기관지 『관동 문학』 창간호를 발간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내면서 영동권 문인들의 발표지가 되고 있다.

학생 문단의 활동도 계속 이어졌다. 특히 강릉 사범 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던 시인 윤명과 강릉 사범 병설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인 원영동의 영향으로 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시인으로는 박명자, 이충희, 최명길, 엄창섭 등을 꼽을 수 있다. 윤명은 비극적인 세계 인식 속에 혹독한 자기 성찰의 세계를, 원영동은 넉넉한 관용과 달관의 세계를 각각 보여주었다. 교육계에 투신해 훗날 서울에서 활동한 이영섭은 19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사라져 가는 고향의 가치를 재탐색하는 시들을 발표했다. 1960년대 초까지 활발했던 강릉 시단은 이후 많은 시인들이 직장을 찾아 서울을 비롯한 타지로 떠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맞게 된다.

[1980~1990년대 강릉 시단]

침체기를 맞았던 강릉 시단이 다시 활성화 된 것은 1980년 '해안 문학 동인회'가 결성되고, 젊은 시인들이 주축이 된 '바다 시 낭송회'가 1980년대 내내 꾸준히 활동한 덕분이다. 1980년대는 전국적으로도 동인지의 시대였다. 강릉 문인 23명이 참여한 '해안 문학 동인회'는 동인지 『해안』을 내면서 꾸준하게 활동을 펼쳤다. '바다 시 낭송회'의 출현은 강릉 시단의 세대 교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신승근, 이언빈, 박기동, 심재상 등 30대 시인들이 주축이 되어 까페 다랑에서 매달 시낭송회를 연 '바다 시 낭송회'는 1979년 결성된 '암호 동인' 시 정신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강릉 시단에 활력을 주고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끼쳤다. 강릉, 원주, 춘천, 삼척 지역의 여성 시인들이 모여 1981년 창립한 여성시인 모임 '산까치'는 여성 문인들의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이외에도 1987년 결성된 '강릉 오죽 문학회', 1988년 결성된 '우림 문학회', 1994년 『열린시』 창간호를 펴낸 '열린 시 문학회', 동인지 『섬』을 펴낸 가톨릭 관동 대학교의 '현상 문학 동인회', 강릉 원주 대학교 문학동아리 '미르월'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이 시기에는 엄창섭, 박호영, 심재상 등 비평가들의 활동이 활발하여 강릉 시단에 활기를 더했다.

[2000년대 이후 강릉 시단]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문학의 위기'가 회자되던 1990년대 이후 한국 문단 전체가 활력을 잃은 가운데 강릉 시단도 침체기를 맞았다. 시적 지향과 감각이 맞는 시인들끼리 모여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던 '동인지 시대'가 가고, 아예 홀로 독자적인 창작 활동을 하거나, 문학 단체에 소속되어 소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시인들이 늘어났다. 한국 문인 협회 강원지회와 한국 작가 회의 강원 지회는 각각 기관지 『강원 문학』과 『강원 작가』를, 한국 문인 협회 강릉 지부는 기관지 『강릉 문학』을 매년 간행하고 있다. 여기에 매년 꾸준히 발간되어온 관동 문학회의 기관지 『관동 문학』을 더하면 2000년대는 기관지 중심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여성 시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져 강원 여성 문학인회, 강릉 여성 문인회 등이 잇달아 출범한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또한 강릉 사범 학교와 강릉 사범 병설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시인 윤명원영동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1996년 '강릉 사랑'이란 모임을 결성하고, 이후 2012년 '강릉 사랑 문인회'로 개칭하여 회지 『강릉 가는 길』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한편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시집을 낸 강릉 출신의 출향 시인으로는 강우식, 박세현, 박기동, 강세환, 박용재, 박용하, 심재휘, 권현형, 김선우 등을 꼽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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