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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705
한자 土器
영어음역 togi
영어의미역 earthenwar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
집필자 이상수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신석기 이래 점토를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개설]

토기(土器)는 신석기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지는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어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을 도기(陶器)라 부르고, 유약을 바른 것을 자기(磁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워서 신석기 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내용]

각 시대별 대표적인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 초기철기 및 원삼국시대의 경질민무늬토기[硬質無文土器]와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삼국토기(三國土器), 통일신라토기 등이 있다.

신석기 시대는 빗살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가지무늬토기[彩文土器]등이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토기 표면에 빗과 같은 다치구(多齒具)의 시문구로 새기거나 그어 만든 각종 문양이 들어가 있는 토기로, 기본적으로 뾰족밑[尖底]에 포탄형을 이루나 일부 납작밑[平底]의 기형도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손으로 빗고 한데가마[露天窯]에서 만든 토기이다. 문양구성이 기하학적인 선을 배합하여 만들었다고 하여 기하문토기[幾何文土器]라고도하고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에 상대되는 말로 유문토기[有文土器]라고 부르기도 한다. 빗살무늬토기는 B.C. 6000년 전에 출현하였다고 보는데 중국 동북지방, 시베리아 등과 멀리 북부 유럽에서도 분포하고 있어 북방문화권을 이룬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등이 있다. 민무늬토기는 일반적으로 갈색 내지 황갈색의 색상, 무문양, 납작바닥을 기본형으로 하는 기형, 장석·성영립 등 화강암계의 굵은 사립이 섞인 태토를 사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민무늬토기는 한데가마에서 구웠는데, 지역마다 그 형태가 다른 독특한 기형들이 있다. 즉 압록강 중상류에 분포하는 공귀리식토기, 청천강 이북과 중국 동북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미송리식토기, 대동강과 재령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팽이형토기[角形土器], 충청도와 전라도에 분포하는 송국리식토기,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口脣刻目土器], 한강 이남에서 후기에 나타나는 아가리띠토기[粘土帶土器]등이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사용되었다. 민무늬토기에는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가 발전되어 경도가 높아지고, 기형이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경질민무늬토기[硬質無文土器]라고도 부른다. 토기의 기형은 깊은바리모양[深鉢形], 독모양[甕形], 항아리모양[壺形], 손잡이, 굽다리잔, 시루, 접시, 뚜껑 등이 있다. 타날문토기는 종래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라고 불리던 것으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에 비해 태토가 정선되고 손으로 빚는 대신에 회전축이나 녹로를 사용하여 기벽이 일정하고 기면에는 타날문이 찍혀 있다. 가마도 종래의 개방된 노천요가 아니라 지붕을 씌운 터널형의 굴가마(登窯)를 채용하여 높은 화력을 내어 매우 단단한 토기를 구웠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표면을 마연하여 광택이 나는 마연흑도도 있고, 입큰납작바닥네귀항아리[廣口平底四耳壺]와 뚜껑이 있는 원통형 삼족기(三足器)도 있다. 표면은 대체로 무문양이지만 직선(直線), 파상문(波狀文), 연화문(蓮花文) 등이 어깨 부분에 시문되어 있다.

백제토기에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이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기형에는 둥근바닥항아리[圓底壺], 납작바닥항아라[平底壺], 굽다리접시, 세발토기, 뚜껑접시, 벼루, 뼈단지(骨壺) 등이 있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고온으로 구워진 경질토기로 흡수성이 거의 없고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나 자연유가 부분적으로 덮여지는 경우도 있다. 기형은 기본적으로 굽다리접시와 목긴항아리가 있으며, 동물형토기와 토우(土偶) 등과 같은 특이한 기형도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태토나 소성이 신라토기와 같으나 기형이나 문양에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즉 기대(器臺)나 이형토기(異形土器)가 사라지고, 굽다리접시, 목긴항아리의 받침이 매우 짧아지며, 뚜껑 꼭지의 형태가 보주형으로 변한다. 또한 문양에 있어서는 화려한 도장꽃무늬[印花文]로 변화된다. 이 시기는 불교의 성행으로 화장용 뼈단지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녹유(綠釉)를 시유한 토기가 출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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