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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의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467
한자 草堂義塾
영어의미역 Chodang School
이칭/별칭 초당영어학교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류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교
주소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설립연도/일시 1906년연표보기
폐교연도/일시 1909년연표보기

[정의]

근대 강원도 강릉시 초당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개설]

국민계몽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강릉의 유지 최돈철(崔燉徹)이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몽양(夢陽) 여운형이 교사로 초빙되어 영어와 근대 교과목을 지도하였다.

[중점교육사항]

교과목은 국어, 한문, 일어, 지리, 역사, 산수, 영어, 체육이었으나, 영어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은 서구지향적인 개화 인물들의 영향과 미래지향적으로 교육시키고자 하는 의미에서였다.

[활동사항]

송정 또는 초당 솔밭에서 동진학교, 화산학교의 학생들과 연합운동회를 개최하여 학생들 간의 우의를 다졌을 뿐 아니라 민족의식을 고취토록 하였다. 운동회에서는 당시만 해도 생소한 축구나 야구, 또는 겨울철에는 스케이트 등을 하여 심신단련을 도모하였다. 뿐만 아니라 애국가요의 보급에도 힘을 써 이 학교에서 가르친 노래는 초당리 주민을 비롯한 강릉군 전 지역의 청소년에게까지 애창되었다.

동진학교와 공동으로 개최한 연합토론회는 항일정신의 고취와 토론문화를 향사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여운형은 부족한 동진학교의 교사를 서울 등지에서 주선하는가 하면, 본인이 직접 출강하기도 아였다.

1908년 10월 1일 사립학교령이 발효된 후 사립학교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극에 달하였을 때 연합운동회를 감시하던 순사와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1909년 폐교하게 되었다. 폐교로 인해 여운형이 서울로 돌아간 뒤 제자들은 노동야학회인 창동회(昌働會)를 조직하여 낮에는 일터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야학활동을 이어갔다. 이들은 훗날 3·1운동 때 농민만세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강릉 지역 각 사립학교와 이 지역 개화 구국정신 창달에 기여한 바가 크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본 내용과 사진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내용에는 1906년 초당의숙이 설립되었다고 하나, 사진은 1935년에 설립된 강습소라 합니다. 1909년에 초당의숙이 폐교된 이후 본 사진의 강습소가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므로 그 내용을 확인하여 주시거나 사진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답변
  • 디지털강릉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 내용과 맞지 않는 사진을 삭제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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