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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427
한자 靑銅器
영어음역 Cheongdonggi
영어의미역 Bronze War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이상수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에 걸쳐 청동으로 만든 각종 도구의 총칭.

[개설]

청동(靑銅)[bronze]은 구리[동(銅)]에 비소(砒素) 3%나 주석(朱錫) 10% 이상을 섞어서 만든 합금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 본격적인 도구 재료로 이용했던 금속이다. 청동에서 주석의 비율은 대체로 청동기의 종류와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25% 이상으로 높아지면 백동(白銅)이라 하여 거울과 의기(儀器) 등을 제작할 때 많이 활용된다. 아연(亞鉛)이 많이 섞이는 경우 황동(黃銅)이라고도 불리며 금빛을 띠게 되어 장식품 제작에 많이 이용된다. 주석 대신에 아연을 넣거나 납[연(鉛)]을 넣어 만들기도 하는데 아연이 45%가 되면 놋[진유(眞鍮), Brass]이 된다. 무기나 생산 도구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전에 청동으로 처음 만든 제품이 장신구나 소형 제품인 것은 세계 여러 지역의 공통적인 양상이다.

[한국의 청동기]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는 한국의 청동기는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부장품(副葬品)]로 발견되고 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의 종류와 양은 시기와 지역, 그리고 무덤 주인공에 따라 다르지만 무기(武器)가 대부분이고, 공구(工具), 의기, 꾸미개[장신구(裝身具)], 차마구(車馬具) 등의 기종이 있다. 무늬로는 기하학무늬[기하학문(幾何學文)]가 주로 장식되어 있다.

무기로는 검(劍), 투겁창[矛], 꺾창[戈], 화살촉[鏃]등이 있다.

검은 검몸[검신(劍身)] 한가운데에 등대[주배(柱背)]가 있고 자루를 별도로 착장하는 것이 중국식이나 북방식의 동검과 다른데, 비파형(琵琶形)과 세형(細形)으로 나누어진다. 비파형동검은 날 중간에 돌기(突起)가 있고, 하부로 내려 갈수록 팽창되면서 고선을 그려, 중국 고대 악기인 비파처럼 생긴 것으로 중국 요령성(遼寧省)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어 요령식 동검(遼寧式銅劍)이라고도 부른다. 이 동검은 중국 요령성을 비롯하여 길림성과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세형동검은 초기 철기시대 이후 비파형동검에 이어 나타난 것으로 검몸과 폭이 좁아진다. 검몸에 허리가 파인 것과 등대의 가로마디가 뚜렷한 것은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이를 한국식 동검(韓國式銅劍)이라고도 부른다.

투겁창은 창날이 비파형처럼 생긴 형식과 곧은날 형식이 있는데, 전자는 비파형동검과 공반하며, 후자는 세형동검과 공반한다. 세형동검과 공반하는 형식은 후대로 가면서 길어지고, 돌기 등의 장식이 붙는 형식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후기 형식은 대부분 한반도 영남 지역에서 출토하여 일본으로 건너간다.

꺾창은 초기 철기 이후 세형동검과 공반하는데 중국 꺾창을 모방하였으나, 날이 측면으로 돌출된 원(援) 부분이 없는 간략화된 형식이며, 화살촉은 몸의 모양이 양날개형[양익형(兩翼形)]과 편평삼각형(扁平三角形)인 것이 있다.

공구에는 도끼[부(斧)], 손칼[도자(刀子)], 끌[착(鑿)], 사(鉈) 등이 있다. 이중 도끼는 날 부분이 부채 모양[선형(扇形)]을 이루고, 머리 부분에는 횡단면이 네모꼴인 소켓을 갖추고 있어 자루를 맞추게 되어 있다.

장식적인 의기로서 대표적인 것은 거울인데, 원형에 반원형 단면의 테두리가 있고, 뒷면에 꼭지손잡이 2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뒷면 전면에 기하학무늬가 장식되었는데, 그 무늬의 선이 거친 거친무늬거울[조문경(粗文鏡)]과 정교한 잔무늬거울[세문경(細文鏡)]이 있으며, 각각 비파형동검 시기와 세형동검 시기에 보급된다.

제사장(祭司長)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무구(巫具)로서 청동방울[동령(銅鈴)]은 세형동검 시기에 남한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제작 보급되었다. 여덟 가지 방울이 달린 팔두령(八頭鈴)과 가지 양 끝에 방울이 달린 이두령(二頭鈴), 나무자루 끝에 부착하게 된 포탄형 방울인 간두령(竿頭鈴) 등이 있는데 각각 방울에는 장식이 있다. 이밖에 의기적인 성격을 띤 청동기로 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 나팔형동기(喇叭形銅器) 등이 있다.

이러한 한국 청동기는 계통적으로 황하 유역의 중국 청동기와 구별되고, 남부 시베리아, 몽골 지역을 거쳐 오르도스(Orodos) 지방으로 유입되는 북방 청동기와 가깝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예니세이강 상류의 미누신스크(Minusinsk) 지방에서 성립된 카라숙 문화[Karasuk Culture, B.C.1200~700]에서 찾기도 한다. 이 문화가 중국 내몽고(內蒙古)에 가까운 오르도스 지역을 거쳐 랴오허강[遼河] 서쪽의 다링강[大陵河] 유역에 파급되고, 이 지역에서 남산근(南山根) 유적 유물로 대표되는 씨야지야디앤 상층문화와[夏家店上層文化]와 관계를 갖는다.

한국의 청동기 문화는 씨야지야디앤 상층문화와 인접하면서 북방계의 청동기 문화의 요소가 줄어들고, 이 지역 나름대로 발전한 비파형동검과 기하학무늬 거울 중심의 능하(陵河) 유형으로 발전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청동기의 변천 과정은 크게 비파형동검 이전 시기, 비파형동검 시기, 세형동검 시기로 나누어진다. 비파형동검 이전 시기는 기원전 12~9세기로 동검 등의 무기가 발견되지 않고, 치레걸이와 소형손칼이 주로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비파형동검 시기는 기원전 9~7세기경으로 다링강 유역의 조양(朝陽)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유적이 대표적이다. 비파형동검과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다뉴조문경(多鈕粗文鏡)]등을 비롯하여 비파형창끝과 부채모양도끼 등 한국계 청동기의 기본이 되는 청동기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세형동검 시기는 기원전 4~3세기경으로, 후기는 기원전 2~1세기경이다. 전기에는 세형동검을 비롯하여 투겁창, 꺾창, 여러꼭지거친잔무늬거울[다뉴조세문경(多鈕粗細文鏡)]이 공반되며, 충청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한 지방에서는 이형동기(異形銅器)인 방패형·나팔형·원개형동기 등이 함께 출토된다. 후기에는 세형동검과 정교한 무늬의 잔무늬거울이 보급되고, 각종 청동방울이 만들어진다. 아울러 이 시기에 남한 지방에서 유행하는 잔무늬거울, 세형동검, 세형투겁창이 일본으로 전파된다.

이러한 청동기는 거푸집[용범(鎔范)]을 만들어 구리물을 부어 만드는 주물 방법으로 제작된다. 거푸집은 돌로 만든 것과 흙으로 만든 것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조각하기 쉬운 활석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인데, 일부 사암제도 있다. 특히 전라남도 영암에서는 수십 기종에 해당되는 거푸집이 일괄 발견되어 일정 지점에 전문 공방(工房)이 마련되어 제작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거푸집은 대체로 평평한 직육면체로 두 짝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데, 측면에 구리물을 부어 넣기 위한 구멍이 있다.

비파형동검 시기에 한반도에서 축조되는 고인돌[지석묘(支石墓)]과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등의 무덤에서는 대부분 비파형동검과 투겁창, 도끼 정도가 부장되고, 거울과 같은 의기와 치레걸이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세형동검 시기에 와서 돌무지나무널무덤[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 나무널무덤[목관묘(木棺墓)]에서 동검, 투겁창, 꺾창 등의 무기와 함께 청동거울을 비롯하여 청동방울 등의 의기가 부장된다. 많은 청동기가 발견되는 무덤의 주인공의 신분은 추장이나 군장(君長)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 특히 청동방울이 부장된 무덤의 경우는 제사장의 성격을 가졌을 것으로 해석된다.

[강릉의 청동기]

지금까지 강원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은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자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춘천 근교 출토 청동검, 횡성 강림리 출토 청동검과 청동거울, 홍천 방량리 출토 청동검, 평창 대하리 출토 청동검, 고성 사평리 출토 청동검, 고성 거진리 출토 용범, 양양 정암리 출토 청동검과 청동거울 등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발견되거나 발굴 조사를 통해 알려진 자료로는 춘천 중도 철기시대 적석총 출토 청동제귀고리, 홍천 월운리 출토 비파형동검, 속초 조양동 청동기시대 고인돌 출토 부채꼴모양의 청동도끼[선형동부(扇形銅斧)], 춘천 현암리 청동기시대 집자리유적 출토 비파형동검의 슴베편, 춘천 우두동 청동기시대 석관묘 출토 세형동검과 동촉, 평창 하리 청동기시대 석관묘 출토 비파형동검, 정선 아우리지 청동기시대 집자리유적 출토 청동제 반지형 장신구, 동해 송정동 철기시대 주거지 출토 청동 소환과 청동방울 등이 있다.

한편, 강릉 지역은 영동 지방의 최대 중심지라는 오랜 역사성과 전통성에 걸맞게 청동기시대 유적 또한 대규모로 분포하고 있다. 유적은 크게 주거 유적과 분묘 유적으로 구분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은 주거 유적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적의 밀집도나 분포 수에 비해 현재까지 강릉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즉 1963년 포남동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에서 청동화살촉 1점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초당동 강릉고등학교 교사 신축 부지 내 초기철기시대 주거유적에서 중국 한나라 청동 화폐인 서기 4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주조품의 오수전(五銖錢) 2점과 청동환(靑銅環) 1점이 출토된 바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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