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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013
한자 潛水艦浸透事件
영어음역 Jamsuham Chimtu Sageon
영어의미역 NK Submarine Infiltration Incident
이칭/별칭 안인진 북한잠수함침투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강릉시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인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996년 9월 18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96년 11월 7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안인진리 대포동 앞 해상
발생(시작)장소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대포동
관련인물/단체 이광수|강동파출소|인민무력부

[정의]

1996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지역으로 잠수함을 이용해 침투한 북한군 무장공비 토벌사건.

[개설]

북한의 무장공비를 승선시킨 잠수함이 1996년 9월 15일 19시에 강릉 앞바다에 도착하여 공작원을 상륙시켰다. 그 후 1996년 9월 16일 20시 30분, 전날 침투시킨 공작원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안인진리 해안에 정선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1996년 9월 17일 2차 정선에 성공하였으나 기관고장으로 좌초되어 26명의 무장공비들이 내륙으로 침투하였다. 내륙으로 침투한 무장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 11월 7일까지 50여 일간 아군과 치열한 추격전을 벌인 사건이다.

침투인원은 총 26명으로 지도원 2명, 승조원 21명, 정찰조 3명이며, 침투간첩 소속은 인민무력부 정찰국 22전대 제2편대 수중침투 부대원들이다. 이들의 잠수함은 유고급 잠수함으로서 잠수 및 부상속도가 빠르고 기동성이 요구되는 비정규전 또는 특수공작용이다. 잠수함의 제원은 상승무게 275톤, 수중무게 325톤, 길이 34m, 폭 3.8m, 수상최대속도 7노트, 수중최대속도 12노트, 잠수수심 70-100m이다.

[역사적 배경]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남북 간에는 다양한 접촉과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인 교류·협력이 시작되었다. 1990년에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한 체육교류인 통일축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열렸다. 이어서 1991년 1~2월 남북체육회담이 열려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할 단일팀 구성에 합의하고, 1991년 4월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을 합의하였다.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여기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기도 하는 등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던 시기였다.

[목적]

강릉 지역에 침투한 무장간첩들에 대한 토벌이다.

[발단]

1996년 9월 18일 1시 35분경 최초 발견자인 강릉 대종운수 택시기사 이○○(37세)가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대포동 앞 해상(20~30m)에 돌고래 같은 물체가 보이면서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1시 45분경 강동파출소에 신고하여 순경 허○○와 신고자가 현지를 재확인 후, 1시 50분경 인근 군 초소에 연락하여, 함께 현장에 출동하여 유고급 잠수함으로 무장공비가 침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경과]

1996년 9월 18일 1시 50분경 대포동 앞바다에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확인한 후, 4시 15분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어 도주한 무장공비들에 대한 수색이 시작되었다. 16시 30분에 강동면 임곡리 청학산 중턱에서 타살된 무장공비 사체 11구가 발견되었으며, 16시 46분에 강동면 모전2리 정○○(54세), 남편 홍○○(60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릉경찰서 강동파출소 경장 전○○, 경장 최○○가 무장공비 이광수를 생포하였다.

1996년 9월 19일 10시 25분경에는 강동면 만덕산에서 703특공대가 무장공비 3명을 사살하였고, 14시 9분경에 추가로 구정면 어단리 칠성산 부근에서 군작전으로 무장공비 3명을 사살하였다. 16시 5분경에 강동면 산성우리 오이골 괴일재 268고지에서 무장공비가 던진 수류탄에 아군 1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괴일재에서 무장공비 1명을 사살하였다.

9월 21일 9시 55분경 강동면 언별리 칠성산에서 무장공비와 교전 중에 3공수여단 중사 이○○가 사망하였다. 9월 22일 6시 15분경 강동면 언별리 칠성산에서 군작전으로 무장공비 2명을 사살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아군 2명이 사망하였다. 9월 23일 6시 30분경에는 칠성산 갈미봉에서 민간인 1명이 피살되었고, 9월 28일 6시 45분경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느르재에서 무장공비 2명을 발견하여 1명은 사살하고 1명은 도주하였다. 9월 30일 15시 20분경에는 강릉시 왕산면 도마리 석우동에서 무장공비 1명을 사살하였다.

10월 1일 18시에 통합방위사태를 을종에서 병종으로 전환하였다(단 작전지역인 강릉·동해·속초·평창·정선·고성·양양은 을종사태 계속 발효). 10월 9일 14시 30분경에는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재미재산 중턱에서 송이채취 주민 3명이 피살되었다. 11월 4일 8시를 기해 강릉·속초·양양 지역이 병종사태로 전환되었으며, 11월 5일 10시 30분경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향로봉 창바위 부근 야산에서 성명 미상의 정찰조 2명을 사살하였으며, 1996년 11월 7일 17시를 기해 작전이 종료되었다.

[결과]

잠수함침투사건 작전결과를 보면 침투한 무장공비 26명 중 생포 1명, 사살 13명, 사체발견 11구, 도주 1명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노획품은 잠수함 1척 등 374종 4,380점이다.

피해상황은 군인 전사 10명, 부상 23명이며, 민간인 4명 사망, 오발사고로 인한 예비군 1명 사망 등이다.

[의의와 평가]

남북 간에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논의와 교류가 점차 확대되어 가는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으로서 북한의 야욕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국토방어는 군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하는 것이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신고정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사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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