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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825
한자 柳義養
영어음역 Yu Uiy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776년(영조 52년)연표보기
성격 문신
아버지 유무(柳懋)
어머니 한중희(韓重熙)의 딸
유경양(柳敬養)
아내 조각(趙慤)의 딸
출신지 서울
성별
생년 1718년(숙종 44)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전주
대표관직 강릉부사|예조참판|공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승지 유태명(柳泰明)의 손자이며, 유무(柳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한중희(韓重熙)의 딸이다.

[생애]

1756년(영조 32) 생원이 되고 현감을 지낸 뒤, 176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5년에 정언(正言)·사서(司書)·수찬·교리를 역임하고 1775년(영조 51) 집의(執義)로서 영남어사(嶺南御史)가 되었다. 1776년 왕세손의 응제(應製)에서 거수(居首)로 뽑혀 문명을 날렸고, 이어 통정대부로 승품되어 1777년(정조 1) 강릉부사로 부임하였다. 1779년 성천부사를 거쳐 1781년 예조참의로서 예조이정당랑이 되어 『춘관지(春官志)』와 『영희전지(永禧殿誌)』를 편찬하였다. 1783년(정조 7) 예조참판으로 감동관(監董官)이 되어 덕릉·정릉을 개축하였고, 이어 승지가 되어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수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공조참판으로서 『춘방지(春坊志)』를 저술, 다시 1787년 부총관(副摠管)으로서 『오례의(五禮儀)』를 보집하였고, 1788년(정조 l2) 『춘관통고(春官通考)』를 저술하였다. 조선후기 문신 이재(李縡)가 편찬한 각종 예서(禮書)인 『도암소편서사(陶菴所編書社)』를 인출하기도 하였다.

[활동사항]

1776년(영조 52)에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주민들의 구휼에 힘썼다. 영서 지방의 화삼전(火蔘田) 수세 문제, 속전세(續田稅) 문제, 강릉부 공삼(貢蔘) 감세 문제, 강릉부 봄보리 작전(作錢) 문제 등의 민폐를 임금에게 알렸다. 또 진전(陳田)의 면세 문제, 표류해 온 왜인의 문제 등도 강릉 지방의 큰 폐단으로 지적하였다.

[저술]

1784년(정조 8) 왕명을 받아 편찬한 『춘방지(春坊志)』가 있다. 『춘방지(春坊志)』는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위해 설치한 시강원의 직제·교육·의식 등 제규정을 기록한 책이다.

[상훈과 추모]

유의양(柳義養)이 임기가 되어 돌아가자 부민들이 감사하며 단(壇)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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