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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385
한자 安東金氏三世三孝二烈之閭
영어음역 Andong Kimssi Samse Samhyo Iyeol Jiryeo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Andong Kim Cl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강원도 강릉시 교2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열각
건립시기/연도 1941년연표보기
관련인물 김몽상|김몽상의 처 강릉김씨|김석진|김석진의 처 강릉최씨|김구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교2동 7번국도
소유자 안동김씨 종친회

[정의]

강릉시 교동에 있는 안동김씨 3대와 그들의 아내 2명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각.

[개설]

안동김씨 삼세삼효이열지려(安東金氏 三世三孝二烈之閭)안동김씨 김몽상(金夢相)의 효자비와 그의 처 강릉김씨의 열녀비, 김몽상의 아들 김석진(金錫晋)의 효자비와 그의 처 강릉최씨의 열녀비, 김석진의 아들 김구(金坵)의 효자비가 있는 효열각(孝烈閣)이다.

김몽상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슬퍼하였고, 그의 처는 시부모를 정성껏 섬겼으며 남편이 병으로 눕자 정성껏 간호하였고 단지수혈(斷指輸血)하였다. 또 남편의 상을 당해서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효자 김석진은 부모의 병환에 변(便)의 맛을 보면서 병세를 살피는 상분(嘗糞)의 정성으로 보살폈으며, 20여 년 간 어머니의 병환을 극진히 간호하였다. 처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남편이 병으로 눕자 하늘에 빌며 단지수혈하였다. 김석진의 아들 김구는 어려서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죽으로 연명하면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건립경위]

삼효이열(三孝二烈)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1807년(순조 7)에 정려가 내려졌으며 효열각은 1941년에 중수되었다.

[형태]

와가 단층 팔각 기와지붕이며,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 정면은 홍살문이고 나머지 삼면은 판자로 둘러져 있다.

[금석문]

효열각 정면에는 '안동김씨삼세삼효이열지려(安東金氏三世三孝二烈之閭)'라는 현액이 있다. '효자김몽상지려(孝子金夢相之閭)', '열녀학생김몽상처유인강릉김씨지려(烈女學生金夢相妻孺人江陵金氏之閭)', '효자학생김석진지려(孝子學生金錫晋之閭)', '열녀학생김석진처유인강릉최씨지려(烈女學生金錫晋妻孺人江陵崔氏之閭)', '효자학생김구지려(孝子學生金坵之閭)' 등 5기의 효열비와 「효열각행적기(孝烈閣行蹟記)」, 1941년 후손 김재남(金在南)이 짓고, 김재익(金在翼)이 쓴 「안동김씨효열각중수기(安東金氏孝烈閣重修記)」 등이 있다.

[현황]

안동김씨 삼세삼효이열지려는 안동김씨 종친회에서 소유와 관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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