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298
한자 新宗敎
영어음역 Sinjonggyo
영어의미역 new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이한길

[정의]

연도를 기준으로 할 때, 1900년대를 전후로 만들어진 신흥종교.

[개설]

현재 한국에서 1900년대를 전후로 만들어진 종교로는 천도교, 원불교, 증산도, 대순진리회, 성덕도 등이 있다. 이들 종교는 모두 민족종교임을 내세우고 있는데, 대부분의 종교 교리는 유불선 및 기독교의 이념마저도 흡수·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와 변천]

1. 천도교(天道敎)

천도교는 1860년 4월 5일 조선 철종 11년에 창도된 민족종교로서 동학이 그 전신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는 후에 천도교의 1대 교주가 되었는데, 그는 1824년 10월 28일 경주 근처에서 탄생하였으며 37세 되던 해에 한울님의 계시로 동학을 만들었다. 동학농민전쟁이 외세에 의해 진압된 뒤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 처형된 후 3대 교주로 의암 손병희가 부임했다. 손병희는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하고 3·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였다.

천도교의 경전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있으며 믿음의 대상은 한울님으로 한민족의 전통관념인 한과 우리를 뜻하는 동시에 무궁무한의 우주를 뜻하는 울과 한울을 부모와 같이 섬기고 모시는 존칭으로서 신의 인격화인 님이라고 한다. 우주관은 지기로 천지의 근본인 동시에 우주의 본체를 말한다. 인간관은 시천주(侍天主)로서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태어난 동시에 사람이 사는 근본이 한울님을 믿고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모시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내세관은 육적 장생, 영적 장생, 덕업 장생을 내세우고 도덕관은 수심정기, 정성, 공경, 믿음이다. 천도교의 사상적 특성은 인내천, 후천개벽사상, 보국안민사상, 동귀일체 사상으로 되어 있다. 1961년 최시형, 손병희의 법설이 포함된 『천도교경전』을 간행하였으며 1972년 준공된 서울의 수운회관은 천도교의 상징적인 건물로 그 중심에 서고 있다.

강릉에 천도교가 생긴 것은 1970년도 교구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부터이다. 그 전에는 강릉 정교실이라 했다. 정교실은 교구보다 낮은 하위단계의 조직이다. 교구가 되기 위해서는 50호 이상이어야 했다. 다행히 교구추진위원회가 설립된 지 3~4년 후에 이 기준을 충족하여 교구가 될 수 있었다. 강릉시 단오장길6번길 15-6[노암동 727-5번지]에 있는 현재의 교구 건물은 1980년에 매입하였고, 1982년에 강릉교구 겸 수도원을 개관할 수 있었다. 현재 이 건물은 교구 및 수도원을 겸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하계수련원으로 전국의 동덕(교인들이 서로를 호칭하는 방법)들이 이곳을 다녀갔으나 장소가 협소하고 시설이 충분하지 못해 2006년 여름에 다시 수리를 할 예정이다.

초대 교구장은 이길항 동덕으로 3년을 역임하였고, 2대 교구장은 오늘날 강릉교구의 실질적 산파역할을 하였던 박용순 동덕으로서 6년간 교구장을 역임하였다. 3대 교구장은 김창완 동덕으로서 2년을 역임했고, 4대 교구장은 성기남 동덕으로 1년을 역임한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5대 교구장은 이향우 동덕으로 현재까지 18년동안 역임하고 있다. 교구장과는 별도로 수도원장이 있는데, 1982년 초대 수도원장으로 이한영 동덕이 부임하여 왔다. 20여 년을 역임하고 떠났는데, 그 뒤를 이어 송문원 동덕이 2년간 근무했으나 그 이후로는 2006년 현재까지 수도원장직은 공석으로 남아 있다.

천도교는 신도수를 말할 때 몇 명 단위로 세지 않고 몇 호 단위로 말을 한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개념 때문이다. 연월은 월성과 연성이 합해진 말인데, 연월성으로 조직을 운영해 나간다. 월성은 월마다 내는 성미를 일컫는 말이고, 연성은 연마다 내는 성미를 일컫는 말이다.

월성을 내는 방법을 살펴보자. 매일 밥을 할 때 식구 수대로 쌀을 한 숟가락씩 모아서 한 달이 되면 30%를 서울에 있는 중앙총부에 보내고, 70%는 지방교구가 운영경비로 사용한다. 월성이란 매주 시일 저녁 기도 시 청수 일기와 백미 한 주발을 모아 6개월째에 중앙총부에 30%를 보내고, 40%는 지방교구가 사용하고, 나머지 30%는 연원주에게 보낸다. 시일(侍日)이란 천도교에서 쓰는 용어로 기도를 하는 일요일을 의미한다. 포교조직의 단위와 별개로 공부하는 조직이 있는데, 이를 연원이라 한다. 이 조직의 장을 연원주라 부른다. 현재 강릉교구가 속해 있는 연원은 관의포에 속해 있다. 관의포는 거진교구, 속초교구, 강릉교구, 태백교구, 관의교구(서울), 은평교구(서울), 대연교구(부산) 등 8개 교구가 속해 있으며, 연원주를 도정이라고도 호칭한다. 도정은 1명이고 그 밑에 도훈이 2명 있고 또 그 밑에 신훈은 여러 명이 있다. 현재 도정은 서울 관의교구에 있고, 도훈은 서울과 동해에 거주한다.

천도교인들이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 동덕(同德)이다. 그리고 서로를 부를 때 도호(道號)를 부르는데, 도호는 보통 가입한 지 5년 이상이 되고, 물론 그 기간동안 연월성을 잘 내어야 하고, 그러면 연원주가 도호를 지어준다. 남자는 암자 돌림으로 짓고, 여자는 당호로 부른다. 예를 들면 남자는 묵암, 벽암 등으로 부르고, 여자는 봉천당, 명실당 등으로 호칭한다. 또 연호도 포덕(布德)으로 칭한다. 2006년은 천도교 포덕 147년에 해당한다.

사실 강릉에서의 동학[천도교의 전신] 활동은 천도교인들의 말에 의하면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정선, 영월, 홍천의 동학도들이 이곳으로 진입하여 3일동안 일본군과 접전을 벌리다가 금산을 통해 다시 도망친 적도 있었다 한다. 1919년 서울에서 설립된 천도교학생회가 이후에 청우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들이 동해안에서, 특히 이북지역에서 포덕활동을 많이 하였다. 그 후손들이 강릉 등 여러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은 현재의 강릉 천도교인들로서 현재 55여 호가 있다.

2. 원불교(圓佛敎)

원불교는 1916년 4월 28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26세의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 아래 그의 깨달음을 포교하면서 시작되었다. 인생과 세계에 대한 성찰로서 5년 만에 깨달음을 얻은 박중빈은 우주의 질서를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를 천명하였다.

그 후 그는 유(儒)·불(佛)·선(仙) 및 기독교의 성서(Bible)도 섭렵했다. 그러나 불교의 『금강경』이 자신의 깨달음과 가장 비슷하다고 여기고, 근본 진리를 밝히는 데는 불법(佛法)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원불교는 석가모니불을 연원불로 하여 부처님의 도덕을 배우고 가르친다 하여 불교에 연원을 정한 새 불교라 하여 원불교라 이름하였다. 또한 모든 종교의 근본 원리를 알아서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 O의 모양)’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사은(四恩) 사요(四要)와 삼학(三學) 팔조(八條)로써 신앙과 수양의 강령으로 하는 한편, 모든 종교의 근본원리도 이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앙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 교리와 제도를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했다.

법신불 일원상은 4은으로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을 들고 있으며 일원상 진리의 내역은 곧 4은이며, 4은의 내역은 우주만물이라 하였다. 4요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 숭배이고, 3학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 취사이며, 8조는 신, 분, 의, 성, 불신, 탐욕, 나, 우(信, 忿, 疑, 誠, 不信, 貪慾, 懶, 愚)이다.

1938년에는 『불교정전(佛敎正典)』을 간행하여 기본원리인 일원상의 진리를 포명(布明)하였으나, 일본 관헌의 탄압이 계속되어 겨우 교단을 유지해나갔다. 1943년 교주가 죽자 송규가 종법사(宗法師)가 되어 교통(敎統)을 계승하고, 광복 후 1947년에는 교명을 원불교로 개칭하는 한편, 교육·자선(慈善)·교화(敎化)의 3대 실천목표를 세워 포교에 힘쓰다가, 1962년 송규가 죽자 김대거(金大擧)가 2대 종법사에 취임하였다. 현재 11대 종법사로 이광정 종법사가 취임하였으며 원기(원불교 달력) 91년째를 맞고 있다. 교세는 확장 중이며 서울 흑석동에 원불교 서울회관이 있고, 이리에 원광대학교 및 4개의 학교법인이 설립되어 있다.

원불교가 강릉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원기 56년이었다. 당시 홍제동에서 신도들 몇몇이 모여 춘천교당의 교무를 모셔와 한 달에 한 번 법회를 열었는데, 당시 인근 종교단체와의 마찰로 인하여 한동안 초청법회가 중단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신도들의 정성으로 3년 후 원기 59년에 다시 시작하면서 속초교당의 교무가 강릉으로 출장법회를 나오게 되었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원기 69년 3월 8일에 강릉시 임당동에 정식으로 교당을 열었고, 원기 70년에 전명진 초대 교무가 부임하였다. 이후 매주 법회가 열려서 사회 및 정신교화에 힘쓰게 되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교당이 없이 이리저리 전셋집을 옮겨 다니는 고통 속에 원기 73년에 여러 분의 희사를 받아 비로소 경강로 1933-3[홍제동 374-4번지]에 강릉교당을 설립하게 되었다.

원기 77년에 전해덕 2대 교무가 부임하였고, 원기 82년에 현재 교무이신 3대 교무 최도정 교무가 부임하였다. 최교무가 부임하고 보니 홍제동 강릉교당이 위치상 종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건물이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던 차에 2002년 태풍 루사로 건물이 침수되자, 이에 현재의 위치인 교동택지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현재 건물에는 법당과 생활관이 갖추어져 종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나름대로 적절한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원불교 강릉교당의 신도는 수백 명이고, 열정적으로 매주 법회에 참여하는 신도 역시 수십 명에 이른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교화에 힘쓴 결과 교세는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3. 증산도(甑山道)

증산도는 1901년 고부 유생이었던 강일순(姜一淳)이 전주 모악산 밑에서 창도한 종교로 교주의 호가 증산이므로 증산도라 하였다. 증산은 27세에 팔도를 다니던 중 충남의 김경신에게서 얻은 태을주(太乙呪)와 연산인 김일부에게서 들은 정역의 이론을 바탕으로 1901년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서 수도를 시작한 지 9일 만에 대각을 얻어 자신이 신명계와 인간계를 통솔하고 천지운동을 고쳐 후천선계를 개벽할 상제의 권능을 받았다고 한다.

증산도의 『대순경전』에는 증산이 도를 얻은 뒤 풍운조화를 뜻대로 하고, 예언과 기행, 이적이 있다고 하였는데, 강일순이 1909년 사망 후 부인 고씨가 근산의 영에 접했다고 했으며 천지공사를 행한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모여 1914년 태을교라는 교단을 형성한 것이 증산도의 모태가 되었다.

증산도의 중심교리는 강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에 집약되어 있는데, 첫째 운도공사(運度公事), 둘째 신도공사(神道公事), 셋째 인도공사(人道公事)로 나눌 수 있다.

운도공사는 다시 세운공사(世運公事)와 액운공사(厄運公事), 교운공사(敎運公事), 지운공사(地運公事)로 4분된다. 강증산은 하늘의 권능으로 천지의 운도를 고친다는 뜻으로 운도공사라 하였다. 운도설은 동양의 역학에 기초한 것으로 우주에는 필연적으로 변하고 바뀌는 원리가 있는데, 그 도수가 예정되어 있고, 이것에 의해 선천계와 후천계가 구분되고, 선천계가 바뀌는 시대를 말세라 불렀다. 이 말세의 운도를 잘 조정하여 후천지상선계를 개벽하는 것이 세운공사다. 말세에는 심판이 따르므로 이를 다스려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도법이 액운공사이며 세상의 동학, 서학, 남학, 유불선, 무축, 음양, 도참, 지리, 의학, 복술의 진수를 뽑아 무상대도를 펴는 것이 교운공사다. 지운공사는 각 지방 명당의 신명과 지운을 이용하여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 하였다.

신도공사는 신명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해원공사, 신명의 배치, 신명의 통일이 있다고 하며, 인도공사는 말세에 처해 있는 인간들의 심신을 수련케 하며 후천선계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공사이다.

증산도의 종정인 안경전이 펴낸 『도전(道典)』에 의하면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라 인류문화를 총체적으로 개벽한 인간의 생활문화의 대도라 하였다. 증산도의 체제는 위로부터 교정, 교령, 교감, 평신도로 구성되며, 이곳에서 모시는 분은 강일순 상제님, 고판례 태모님, 환인, 환웅, 단군의 국조 삼신, 태모님으로부터 도를 받은 도모님, 산신, 지지신 등 지방신, 조상신 등이 있다.

강릉에는 증산도 강릉옥천도장이 1988년 8월 남문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포남동을 거쳐 현재는 옥가로50번길 7[옥천동 334-9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4. 성덕도(聖德道)

성덕도는 1952년 음력 5월 27일 대구시에서 창도하였다. 현재 본원은 경북 영천시 신녕면 대학길 105[화남리 1135-1번지]에 있다. 초대 도주는 월근(月根) 김옥재(金沃載)이며, 법주는 법해(法海) 도학수(都鶴殊)이고, 현재 대표는 도종(道宗) 윤한수(尹漢壽)라 한다. 성덕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귀천한다고 표현한다. 김옥재 도주는 1960년 귀천하였고, 도학수 법주는 1983년에 귀천하였다.

사람으로서 행할 천도지법은 삼강오륜과 인의예지 등 인륜의 도덕이요, 사람의 본성은 천성선령(天性善靈)인 자성자불(自性自佛)이며 자성반성(自性反省)으로 인간악성을 고쳐 해탈할 수 있는 이치를 원각(圓覺)하고, 이를 가르치어 중생을 광제하고자 길을 연 대도(大道)이다. 1967년 문교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고, 1986년 재단법인 성덕도유지재단을 설립하여 문화공보부의 인가를 획득하여 명실공히 종단의 체제를 형성하였다. 1992년에는 홍보를 위하여 『성덕의 빛』을 발행하였고, 1997년 성덕대학을 개교하였다. 2002년 도헌을 제정하고 11월 27일(음력10월3일)을 성도일로 제정하였다. 성덕도의 경전은 『자성반성 성덕명심도덕경(自性反省 聖德明心道德經)』이라 한다. 도주와 법주가 도덕법을 창제하면서 시작하였고, 자연의 이법을 바탕으로 인간행위의 규범을 천명하고 아울러 수도를 통한 인간고(人間苦) 해탈의 수련법을 설파하였다. 청심주(淸心呪)는 ‘무량청정정방심(無量淸靜正方心)’이다. 한량없이 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을인 인간의 천성적인 본성을 의미한다. 이 본성을 회복하고자 수련을 하고 수련과정에서 청심주를 독송하며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한다.

강릉에서 성덕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52년 7월 10일 성남동 205-3번지에서 한덕수 도생(道生) 집에 방 2칸을 내어 공부하면서 시작되었다. 계성지(啓誠智) 님이 초대 담임으로 강릉 지역으로 부임하였다. 성덕도는 신도들의 도명으로 ‘○○지(智)’란 도명을 사용한다. 계성지 님은 이종원이 본명으로 경남 진주 출신이었다.

1958년 10월 명주군 성산면 금산리 김남교 씨 집으로 이전하였는데, 이것이 훗날 금산교화원으로 불렸던 곳이었다. 그 후 강릉 시내에 있는 한덕수 도생의 집에서 공부하였으나 겨울이 되면 마루가 차가와 공부하기가 힘들어 다시 금산교화원으로 옮겨갔다. 1965년 8월 3일(음력 7월7일) 안동교구에서 강릉교구가 분할·승격되어 유화지(惟和智)[본명: 박장훈] 담임이 부임하였다. 그 후 1969년 4월 교동 구 법원 입구에 택지 130평을 마련하여 6칸 기와집 건물을 신축하였는데, 당시 담임은 공련지(恭連智, 본명: 강차화) 담임이었다. 1972년 4월에 강당을 신축하고, 1982년 9월 9일 신성지(信誠智, 본명: 윤한수) 담임의 지휘 하에 구조물을 철거하고 이층 슬라브로 개축하였다.

성덕도는 현재 전국에 12개 교구가 있고 강릉에도 교구가 있다. 현재 강릉교구는 속초, 동해, 옥계, 삼척, 횡계, 울진, 원남, 기성, 영해 등 10곳을 관할하고 있다. 신도 수는 강릉에 100여 명, 강릉교구 내에 1천여 명을 헤아린다. 전국적으로 30여 만 명 정도 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4.09 [역사와 변천] 4. 증산도 수정 증산도 강릉도장을 증산도 강릉 옥천도장으로 수정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