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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동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182
한자 松川洞戰鬪
영어음역 Songcheon-dong Jeontu
영어의미역 Songcheondong Battl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인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공비토벌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952년 8월 4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2년 8월 4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송천동
발생(시작)장소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2리
관련인물/단체 삼산지서|한청특공대원|최종명

[정의]

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역사적 배경]

제526군은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1951년 1월에 조직된 부대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을 재건하기 위하여 남파되었다.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비정규전 활동을 하였는데, 예하에 2개의 연락소와 6개의 지대를 두어 남한 각 지역에 1개 지대씩을 침투시켰으며 지역별로 유격활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 6개 지대 이외에도 제911·제921·제931·제941·제951·제1001부대 등을 조직하여 남파시켰다.

[목적]

남한의 유격대 책임자에게 북한의 지령문을 전달하고자 침투한 북한군 무장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한 전투이다.

[발단]

북한군 제526군 소속 연락군관 최종명이 제526군 부대장이 보내는 지령문과 남한의 산악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격대 책임자에게 보내는 무전암호해독문서 4건을 소지하고, 호위하는 공비 6명과 함께 남하하였다.

[경과]

제526 소속 연락군관 최종명을 비롯한 무장공비들을 1952년 7월 31일 양양군 어성전 지서에서 발견하고 교전하였다. 교전과정에서 공비 1명만 사살되고 나머지 5명은 산악지대를 이용하여 연곡면 삼산리 지역으로 남하하였는데, 남하 중 잔류병 1명이 합류하였다.

남하한 최종명을 비롯한 무장공비들은 1952년 8월 4일 3시 30분경에 삼산지서 경찰관 및 한청특공대원 11명에 의해서 송천동에서 발견되었으며, 교전 끝에 지령문을 소지한 연락군관 최종명이 사살되었다.

[결과]

송천동 전투에서 경찰관이나 한청특공대원의 피해는 없었으며, 공비 1명을 사살하고 카빈소총 1정과 실탄 60발, 수류탄 2발, 무전암호해독문서 4권 등을 노획하였다.

[의의와 평가]

무장공작원을 양성하는 제526군 부대장의 지령문을 전달하려던 책임자를 사살하고 각종 문서를 노획함으로써 북한군의 남한 내 유격활동 세력들의 활동에 타격을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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