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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병산·산계령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022
한자 石屛山-山溪嶺戰鬪
영어음역 Seokbyeongsan Sangyeryeong Jeontu
영어의미역 Seokbyeongsan Sangyeryeong Battl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인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공비토벌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952년 11월 30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2년 12월 2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 석병산 북방지역
발생(시작)장소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
관련인물/단체 최덕규|이동수

[정의]

1952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역사적 배경]

1951년 말부터 대대적인 남한 내 빨치산들에 대한 토벌로 남한 내에서 유격활동을 하는 세력들이 많이 약화되었다. 1952년부터 남한의 빨치산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은 금강정치학원 출신들을 비롯한 무장부대들을 대거 내려 보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52년 중반 이후에는 남한 내 대부분의 무장투쟁 세력이 주로 산악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

한국전쟁 중 남한 내에서 활동 중인 무장공비들에 대한 소탕을 위하여 벌인 전투이다.

[발단]

1952년 11월 30일 7시경에 강원 전경 216부대 제1중대 1소대장 경위 최덕규가 임계면의 속칭 평양촌을 경유하여 석병산 동북방의 우회측면을 수색하던 중, 14시 30분경 석병산 북방 약 1㎞ 능선에서 공비 5명이 취사중인 것을 발견하였다.

[경과]

공비들을 발견한 즉시 작전을 전개하여 30분간 교전하였다. 교전과정에서 공비 1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4명은 도주하였다. 잔적을 소탕하기 위해 제1중대장 경위 이동수와 부대원들이 산계령 일대의 진로를 차단하고 매복을 하였다. 12월 2일 매복 중에 공비들을 발견하고 교전하여 석병산에서 도주한 공비 3명을 추가로 사살하였으며 1명은 도주하였다.

[결과]

석병산에서 1명, 산계령에서 3명의 공비를 사살하였으며, 소총 9정과 실탄 등 다수를 노획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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