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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383
한자 燈明洛伽寺
영어음역 Deungmyeongnakgasa Temple
이칭/별칭 낙가사,등명사,수다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양식 익공계|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956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자장(慈藏)|경덕(景德)|청우(淸宇)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4칸
높이 측정불가
층수 1층
면적 175㎡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505-16[정동진리 산 17]
소유자 등명낙가사
전화 033-644-5337

[정의]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소속 사찰.

[명칭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강릉부 동쪽 30리에 절이 있다고 하였는데, 등명사라 한 것은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볼 때 이 절은 강릉도호부 내에서는 암실(暗室)의 등화(燈火)와 같은 위치에 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修學徒)가 3경(三更)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사찰을 중창한 경덕(景德) 스님이 1천일 관음기도 끝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이곳은 관세음보살이 계신 보타락가산이라 하여 ‘낙가사’로 사찰명을 정하고 옛 사찰명인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 명명하였다.

[건립경위]

원래 등명사(燈明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지(寺址)에 1956년 경덕 스님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처음 조그마한 절을 지은 경덕 스님이 1천일 관음기도 끝에 해수관세음보살(海水觀世音菩薩)을 친견하고 침술을 점지 받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어 영험을 보였다고 한다. 소문을 듣고 차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스님은 절을 증축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증축해서 현재의 가람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위치]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화비령 동록 괘방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등명낙가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자장율사가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가 침범하여 변방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이름은 수다사(水多寺)였고 신라 말기 병화(兵火)로 소실되어 고려 초기에 중창하여 이름을 등명사(燈明寺)로 개칭하였다. 그 후 조선 중기에 다시 폐사(廢寺)되었다가 1956년 경덕(景德)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 그 뒤 경덕(景德) 스님은 1977년 영산전(靈山殿)을 건립하였고, 1982년에 주지로 부임한 청우(淸宇) 스님이 범종각, 삼성각, 각종 수련법회를 할 수 있는 대형 요사채, 극락전, 약사전을 건립하였다.

[현황]

현재 등명낙가사 경내에는 최근에 건립된 극락전, 영산전, 범종각,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낙가사의 중심법당인 영산전 중앙에는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미륵보살을 봉안하고 그 주위에 청동석가여래좌상과 관세음보살입상, 지장보살입상이 있다. 그리고 중앙 불단 좌우로 모습이 각각인 청자 오백나한상을 봉안되어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37호로 지정되어 있는 오층석탑이 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창건 당시인 선덕여왕 때 세워진 탑이라고 하나 양식상으로 보면 고려 초기 탑으로 추정된다. 2단으로 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연꽃 잎을 조각한 사각형의 복련석(覆蓮石)을 덮고, 그 위에 아무런 조각이 없는 네모난 돌을 올려놓았으며, 그 위에 다시 사각형의 앙련석(仰蓮石)을 올려놓았다.

[의의와 평가]

태백산맥의 한 줄기를 물려받아 동해의 푸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괘방산의 중턱에 다소곳이 위치한 등명낙가사는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강릉 지방 해수관음도량의 요채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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