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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궁산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220
한자 大弓山戰鬪
영어음역 Daegungsan Jeontu
영어의미역 Daegungsan Battle
이칭/별칭 대궁산성 전투,보현산성 전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인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952년 1월 24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2년 1월 27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 대궁산성 터
발생(시작)장소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
관련인물/단체 강릉경찰서|유격지도처|성산지서

[정의]

한국전쟁 중 강릉시 성산면 대궁산성 터에서 공비들과 치른 전투.

[개설]

1952년 1월 24일 조선노동당 제4지구당을 향하여 남하한 공비 18명을 대궁산성 터에서 기습하여 2명을 생포하였다.

[역사적 배경]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38도선에서 방어에 주력하는 장기전 태세로 넘어갔으며, 1951년 7월부터는 휴전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에 노동당은 남한 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수행하던 빨치산 유격대 체제를 당 사업을 주로 하는 지구당 체제로 개편하였다. 또한 1952년부터 남한의 빨치산을 지원하기 위해 금강정치학원 출신과 무장부대들을 내려 보냈다. 그러나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발단]

1952년 1월 24일 조선노동당 제4지구당을 향하여 북한 유격지도처 소속 공비 18명이 남하하였다.

[경과]

강릉경찰서와 전경 제8대대가 합동으로 작전을 전개하던 중 성산지서 병력 20명이 당시 강원도 명주군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보현사 뒷산 대궁산성 터에서 공비 18명을 발견하고 기습하였다. 공비 2명을 생포하였고, 나머지 공비들은 남쪽으로 도주하였다. 전경 제8대대 1중대와 강릉경찰서 부대가 합류하여 추격한 끝에 1952년 1월 27일에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의 만덕봉 전투에서 도주한 공비 중 2명을 추가로 사살하였다.

[결과]

대궁산 전투에서 공비 2명을 생포하였으며, 소총 2정과 실탄 다수를 노획하였다. 추후 만덕봉 전투에서 2명이 추가로 사살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한 내에서 활동 중인 북한노동당 지구당을 지원하기 위해 남하한 공비들을 사전에 일부 소탕함으로써 노동당 세력들의 남한 내 무장투쟁에 타격을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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