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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884
한자 金光轍
영어음역 Kim Gwangcheol
이칭/별칭 애일당(愛日堂),자유(子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김세훈(金世勳)
아우 김광진(金光軫)
아내 안성이씨 이석진(李碩進)의 딸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487년연표보기
몰년 1550년연표보기
본관 강릉
대표관직 예조참판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자는 자유(子由), 호는 애일당(愛日堂).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세훈(金世勳)이다. 안성이씨 이석진(李碩進)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 김양(金讓)은 직장(直長), 둘째 김인(金訒)은 찰방(察訪), 셋째 김근(金謹) 주부(主簿), 넷째 김겸(金謙)은 별좌(別坐)였고, 사위는 심운(沈雲)과 참판을 지낸 허엽(許曄)이다.

[생애]

1487년(성종 18)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애일당에서 태어나 1550년(명종 5)에 졸하였다. 어려서는 효우가 돈독하였고, 어버이를 극진히 모셨으며,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사휴(四休) 박공달(朴公達)과 더불어 사천면 지역에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507년(중종 2)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1513년(중종 8) 문과에 합격하였다. 성품이 엄하고 영민하였으며, 체구가 남보다 뛰어나 위의가 있어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였다. 처음에 벼슬은 정언(正言)이었으나 밀양 사람이 그의 아버지를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특별히 밀양현감에 제수되었다. 관직은 밀양부사와 여주목사를 비롯하여 사간원 사간, 홍문관 교리, 사헌부 장령, 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활동사항]

밀양현감에 처음 부임한 뒤 간사한 아전들의 내력을 적발하기도 하고 고을의 세력자들이 민전(民田)을 강제로 빼앗는 등의 횡포를 부리는 것에 대해 법으로 과감히 다스리는 등 선정을 폈다. 장령(掌令)을 지내고 사간으로 있을 때에 김안로(金安老)가 득세하자 고을 사람들이 한번 찾아가 보라고 권유하였으나 거절하였다. 유관(柳灌)이 천거하여 안동부사가 되었다. 안동부사로 재직할 때 훼손된 향교를 중수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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