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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857
한자 金津里遺蹟
영어음역 Geumjin-ri Yujeok
영어의미역 Archeological Site in Geumjin-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산 464-1번지 일대지도보기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지현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거지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산 464-1번지 일대

[정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위치]

금진리 유적은 강릉시의 남동쪽 끝부분에 해당된다. 국도 7호선을 따라 동해 방향으로 진행하다 좌측으로 나타나는 옥계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의 해안가 소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 경위]

금진리 유적은 이미 철기시대 유물과, 신석기시대 유물이 채집되어 알려진 유적이다. 그러던 중 지난 2006년 2월에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여성수련원에서 원래 건물을 해체하고 새로 건물을 신축하기 전 유적의 분포범위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조사는 2006년 2월부터 동년 4월까지 예맥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했다.

[발굴결과]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야외노지 1기와 철기시대 여(呂)자형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다. 여(呂)자형 주거지의 장축은 남-북 방향이며, 내부에는 주거지 폐기 이후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회색점토층이 퇴적되어 있었다.

[형태]

주거지의 전체 크기는 남-북 장축 10.3m, 동서 단축(큰방) 6.2m이고, 면적은 약 13.5평이다. 북쪽의 큰 방에는 바닥에 점토를 깔았으며, 노지는 주거지의 중앙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장타원형의 점토띠식 노지가 노출되었다. 노지의 크기는 동-서 80㎝, 남-북 115㎝로, 북쪽에 가로 50㎝, 세로 14㎝, 높이 25㎝ 크기의 판석을 막음돌로 세우고 측면으로 점토를 돌려놓았다. 큰 방의 네 모서리에 모두 기둥 흔적이 남아 있으며, 북벽과 동벽을 따라 10×15㎝ 크기의 둥글고 납작한 자갈돌이 노출되었다.

안인리 유적의 2호 주거지 내에서는 불탄 숯기둥이 납작한 초석 위에 세워져 있었으며, 14호 주거지에서 초석으로 보이는 직경 20㎝ 내외의 납작한 판석이 확인된 바 있었으나 이번 조사에서처럼 여(呂)자형 주거지 내에서 다수의 자갈돌들이 주거지 벽면을 따라 열을 지어 나타나는 것을 처음이다. 이는 기둥구멍 없이 주거지 바닥 위에 기둥을 세우거나 납작한 돌위에 기둥을 올리고 자갈돌로 기둥하부를 보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의 서벽을 따라서는 길이 1.57m의 목탄이 노출되었으며, 목탄과 함께 탄화된 갈대가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거지 판자 벽면에 갈대를 덧대었던 것으로 보인다. 큰 방의 출입구 쪽으로는 진흙을 다져 벽체시설을 하였으며, 부분적으로 판자벽도 확인되고 있다. 큰 방의 규모는 동-서 6.2m, 남-북 5.4m, 구덩깊이 60㎝로 면적은 10.3평이며, 출토유물은 민무늬토기호, 두드림무늬토기, 철도자 등이 주로 주거지의 북동쪽 모서리부분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북쪽의 큰 방에서 남쪽의 작은 방으로 연결되는 통로에는 부정형의 황갈색 점토가 쌓여 있는데 이는 그동안 영동 지방에서 조사된 여(呂)자형 또는 철(凸)자형 주거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통로 상부에 발랐던 진흙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 방은 바닥시설 및 내부시설 없이 마련하였으며, 큰 방에서 작은 방으로 가면서 바닥 레벨이 점차 높아져 구덩깊이는 10㎝ 내외로 낮게 형성되어 있다. 작은 방의 규모는 동-서 3.1m, 남-북 2.6m, 면적은 약 2.5평이다.

[출토유물]

금진리 유적의 여(呂)자형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문토기호, 두드림무늬토기편 등의 토기류와 철도자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고 있다. 또한 신석기시대 야외노지에서는 빗살무늬 토기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금진리 유적은 강릉 지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철기시대 유적이며, 발굴조사를 통하여 기존의 안인리, 방동리, 강문동, 동덕리, 양양 가평리에서 조사된 여(呂)자형 주거지가 확인되어 당시 철기시대 유적의 분포범위 및 문화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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