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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116
한자 江陵農樂
영어의미역 Gangneung Farmers Music
이칭/별칭 농사풀이농악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김영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12월 1일연표보기 - 강릉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강릉농악,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
성격 민속놀이
가창자/시연자 박기하|정희철
박자구조 3소박 4박자|2소박 4박자
가창시기 정초|정월대보름|2월 좀생이날|5월 단오날|7월 농한기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무형문화재
전화 033-642-4470[강릉 농악 보존회]
팩스 033-646-4470[강릉 농악 보존회]
홈페이지 강릉 농악보존회(http://www.gnnongak.or.kr/)

[정의]

강원도 태백산맥 동부 지역에서 전해오는 대표적인 영동농악으로서 강릉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농악.

[개설]

강원도 영동 지방의 중심지인 강릉시를 비롯하여 동해시, 삼척시, 양양군과 고성군, 정선군, 그리고 평창군 등의 대표적인 농악이다. 강릉농악은 1985년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강릉 농악 보존회가 보존과 전승을 담당하고 있다.

[구성]

마당굿[판굿]은 질 먹을 때, 걸립굿 중에서 대가댁 마당놀이 때, 봄철의 화전놀이 때에 농악대가 갖가지 기예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농악도 이 마당굿을 중심으로 연행된다. 강릉농악의 마당굿의 보편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인사굿: 농기, 날나리, 상쇠, 풍물, 소고, 법고, 무동 등의 순으로 12채 길가락을 치면서 한 줄로 서서 놀이판으로 들어온다. 장단이 4채로 바뀌면 상쇠, 농기, 날나리는 앞에 서고, 풍물, 소고, 법고, 무동이 각각 한 줄씩 4열 횡대로 구경꾼을 향해 판을 짠다. 판이 다 짜이면 제자리에서 가락이 1채→2채→3채로 빨라진다. 삼채에 맞추어 전 대원이 좌우로 움직이고, 1채, 2채로 가락이 바뀌면서 상모를 돌리고, 발을 올리고, 무동의 춤사위가 빨라진다. 그리고 구경꾼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이는 근래에 농악이 공연화 되면서 생긴 것이다.

2) 두루치기: 인사가 끝나면 4채를 치면서 인사굿 판을 큰 원으로 푸는 과정이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이다. 상쇠가 풍물패를 데리고 먼저 시계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면 소고, 법고, 무동이 각각 뒤를 따라서 큰 원을 만든다.

3) 발맞추기: 대형이 네 개 가락에 맞추어 큰 원을 이루면 3채, 2채, 1채로 가락이 변하면서 발을 맞춘다. 3채 가락에서는 모든 대원들이 한발한발 오른쪽 옆으로 돈다. 2채, 1채 가락에서는 제자리에서 상모를 돌리고 발을 교대로 올리고 무동들의 춤사위가 빨라진다. 한바탕 놀고 난 뒤 성황모시기로 들어간다. 발맞추기 또한 근래 제식훈련의 영향으로 생긴 것 같다.

4) 성황모시기: 성황모시기 가락에 맞춘 사설은 다음과 같이 ‘성황님, 성황님, 동구 밖에 성황님’이 된다. 발맞추기의 원형에서 가락이 4채로 바뀌면, 농기가 끝무동 앞에 가서 전체 대형을 중앙으로 말아 들인다. 대형이 완전히 말리면 농기 주위에 서 있던 무동들이 자리에 앉고 상쇠가 사설을 한다. 상쇠의 간단한 사설이 끝나면 반절을 하고 무동들이 일어나서 성황을 놀린다. 그런 다음 모든 농악 대원들이 큰절을 두 번 하고, 가락이 3채, 2채, 1채로 바뀌어가면서 한 번 논다. 4채로 가락이 바뀌면 상쇠가 앞장서서 말아 들어올 때와 역순으로 풀어내면서 큰 원을 만든다.

5) 칠채 멍석말이: 4채 가락으로 큰 원이 만들어지면 7채를 치면서 상쇠가 앞장서서 멍석말이를 했다가 풀어 나온다. 멍석이 다 풀려지면 4채 가락으로 다시 큰 원을 만든다.

6) 오방 지신밟기: 4채를 치면서 풍물은 풍물대로, 소고는 소고대로, 법고는 법고대로, 무동은 무동대로 작은 원 네 개를 만든다. 상쇠가 이들 원의 중앙에 서서 가락을 3채, 2채, 1채로 바꾸면서 놀다가 상쇠가 쇠를 한 번 꺾으면 모든 대원들이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서면서 한 바퀴 빙 돈다. 다시 4채를 치면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간다.

7) 황덕굿: 황덕은 영동 지역의 말로 ‘횃불’, ‘모닥불’의 다른 말이다. 황덕굿이란 바로 마당에 불을 피워놓고 노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동네 안에서 집터를 다질 때나 다른 마을로 농악대가 불려가서 놀 때는 주로 저녁에 연행되었기 때문에 놀이판에는 항상 황덕이 피워졌다. 그래서 황덕굿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과장이 큰 원 대형에서 다음 과장으로 넘어가지만, 황덕굿[소고, 법고, 무동], 농사풀이 등은 ㅁ자형 대형에서 주로 연희가 이루어진다. 4채를 치면서 큰 원의 대형을 풍물, 소고, 법고, 무동의 순으로 ㅁ자 대형을 갖춘다. 풍물패들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장단을 친다. ①무동 황덕굿, ②법고 황덕굿, ③소고 황덕굿의 순서로 친다.

8) 농사풀이: 농사풀이는 강릉농악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대목으로, 농민의 마을농악, 두레농악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연희는 ㅁ자형 대형에서 이루어지고, 소고, 법고, 무동들이 나와서 1년 동안의 농경생활을 동작으로 나타내는 이른바 농경모의(農耕模擬)가 시작된다. 농사풀이는 대체로 ①가래질, ②논갈이, ③못자리 누르기, ④볍씨 뿌리기, ⑤모찌기, ⑥모심기, ⑦논매기, ⑧호미 씻기, ⑨자매놀이, ⑩낫 갈이, ⑪벼 베기, ⑫벼 광이기, ⑬벼 타작, ⑭벼 모으기, ⑮벼 방아 찧기 등으로 구성된다.

9) 오고북놀이: ㅁ자형으로 만들어진 대형에서 오고북[북 3개, 장구 2개]이 제일 안쪽에 위치하여 북장단과 쇠가락을 교차시킨다. 오고북이 제일 안쪽에, 둘째 줄이 무동, 셋째 줄이 법고, 넷째 줄에 소고가 에워싼다.

10) 팔도 진놀이: ㅁ자형의 대형이 4채 장단에 맞추어 S자형으로 풀어 나간다.

11) 삼동고리: 삼동고리는 3층 무동타기를 말한다. 제일 아래쪽에 4명이 앉고, 그 위에 2명, 제일 위에 1명이 앉는다. 풍물잽이들의 잔가락에 맞추어 제일 아래층이 서고, 두 번째 층, 세 번째 층 순서로 선다. 모든 층이 다 서면 제일 윗층에 올라간 사람이 상모를 돌린다. 앉을 때는 제일 윗층에서 차례차례로 앉는다. 삼동고리가 다 만들어진 후에는 한바탕 어울린다. 이러한 개인 놀이는 마당굿 끝에 보여주는 것으로 동고리, 열두발 상모, 법고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12) 열두발 상모: 열두발 상모를 쓰고 놀이판 중앙에 나가 노는 과장이다. 뒤에서 손을 합치고 외사, 뒤에서 손을 합치고 양사, 땅에 엎드려 외사 등의 묘기를 이채에 맞추어 보여준다.

13) 굿거리: 굿거리 장단에 추면서 무동을 제일 안쪽으로 하여 모여들었다가 3채, 2채, 1채, 굿거리로 다시 풀어 나온다.

14) 뒤풀이: 뒤풀이는 구경꾼과 농악패들이 어우러져 노는 것으로 별다른 형식이 없다.

[형식]

강릉농악의 형식은 가락이 주를 이루는데 강릉농악의 쇠가락에는 1채, 2채, 3채, 4채, 길놀이[신식행진가락], 굿거리, 구식 길놀이 등이 쓰인다. 이 중 일채,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 굿거리 등이 주축을 이루는데, 길놀이 가락은 근래에 와서 행진에 맞도록 짜서 친다. 리듬이 대체로 빨라 활달한 느낌을 주지만, 박자는 대체로 3소박 4박자로 단조로운 편이고, 대부분의 쇠가락은 외가락으로 길게 반복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1채[한마치]는 마당굿[판굿]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가락으로, 매우 빠른 3소박 4박자이다. 꽹과리는 ‘갱-개 갱-개, 갱-개 갱-개’로 치며, 징은 첫째, 셋째 박에 친다. 2박을 한 장단으로 보고 2박 즉 한 장단에 징을 한 번 친다 하여 1채 또는 한마치라 부르는 듯하다.

2채는 조금 빠른 2소박 4박자이며, 꽹과리는 ‘갱-개 개갱- 갱-개 개갱-’으로 치며, 징은 첫째, 셋째 박에 친다.

3채는 강릉농악에서도 널리 쓰이는 가락이다. 조금 빠른 3소박 4박자로 꽹과리는 ‘갱-개 갱-개 갱-개 개갱-’으로 치고 징은 첫째, 둘째, 셋째 박에 치는 것이 원칙이나 첫째 셋째 박 또는 첫 박에만 치는 경우도 있다.

4채는 빠른 3소박 4박자로 꽹과리는 ‘갱-개 개개개 갱-개 개개개’로 치며 징은 첫 박과 넷째 박에 친다.

길놀이[신식 행진가락] 가락은 행진에 맞추기 위하여 최근에는 조금 빠른 2소박 4박자로 친다. 꽹과리는 ‘갠-지 개개, 갠-지 개개, 개개갱 개개갱, 갠-지 개개’로 두 장단을 치면 징은 첫 장단에는 첫째, 셋째 박에 치고 둘째 장단에는 첫째, 둘째, 셋째 박에 친다. 원래는 행진에서 느린 굿거리형의 길놀이가락을 치던 것이었으나, 근래에 이 가락으로 바뀐 것 같다.

굿거리는 춤출 때 치는데, 조금 느린 3소박 4박자이다. 꽹과리는 ‘갱개개갱 갱개개갱 갠-지갱 -갱갱’으로 치고, 징은 첫 박에 친다. 이 가락을 ‘8채’라고도 한다.

12채[구식 길놀이가락]는 행진할 때 치는데, 보통 빠르기의 3소박 4박자로, 경기농악의 굿거리와 같은데, 강릉농악에서는 이를 2채라 한다.

이 밖의 쇠가락으로는 구식 행진가락[천부당 만부당], 빠른 굿거리[3채라고도 함], 맺음가락[9연결가락], 칠채[멍석말이가락] 가락 등이 있다.

[옷차림]

농기수와 호적수는 한복에 청·홍·황색의 삼색 띠를 양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고깔을 쓴다. 상쇠는 상공이라고도 하며, 한복에 남색 등지기를 걸치고 삼색 띠를 매고, 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부쇠와 삼쇠는 한복에 삼색 띠를 매고, 상모지를 단 벙거지를 쓴다. 징수와 장고수는 한복에 삼색 띠를 매고 상모지가 달리지 않은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방망이 상모를 달지만 상모놀음은 하지 않는다. 소고수의 복색은 징수와 같고 수건을 머리에 쓰며, 퍽을 단 벙거지를 쓴다. 법고수[상법고와 끝법고]는 한복에 삼색 띠를 매고 긴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무동[상무동과 끝무동]은 붉은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고 남색 쾌자를 걸친 다음 색띠를 매고 고깔을 쓰며 손에는 수건을 든다. 잡색으로는 포수와 화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포수는 두루마기에 꿩 털을 장식하고 총을 들었다고 한다. 화동은 도포에 장삼을 걸치고 담뱃대를 들었다고 한다.

강릉농악의 복색에서 머리에 쓰는 것으로는 상모와 고깔이 있다. 상모는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가리키는데, 원래는 털로 벙거지를 만드는 것이지만 흔히 문종이를 붙여서 만들고 짚으로 엮어서 만들기도 한다. 꼭대기에는 나무로 만든 꼭지를 다는데, 이를 ‘우늘’ 또는 ‘꼬두마리’라 한다. 꼬두마리 끝에는 굵은 실을 한 자 가량 다는데 이것을 ‘채’라 한다. 채 끝에는 길이 90㎝ 가량 되는 백지를 다는데 이를 ‘상모지’라 부른다. 상모지 끝은 제비초리와 같이 가운데를 잘라낸다. 상모는 상모지가 달린 것과 상모지가 달리지 않은 방망이 상모의 두 가지가 있다. 고깔은 한 변이 30㎝쯤 되게 문종이를 네모로 접어서 만드는데, 얇은 종이를 백·청·황·적 등 여러 색으로 물들여 만든 꽃을 30~40개 정도로 빽빽하게 단다.

강릉농악의 옷차림은 지신밟기, 걸립굿, 정월대보름 달맞이굿, 이월 좀생이날 다리밟기, 횃불놀이, 화전놀이 등을 할 때는 일정하지만 김질[김매기], 못질[모내기] 등 두레 풍물을 칠 때는 일반적인 작업복에 풍물만 드는 정도이다.

[악기 및 도구]

강릉농악에 쓰이는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법고, 호적(胡笛)이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소고와 법고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나, 강릉 지역에서는 두 악기의 크기가 사뭇 다르다. 큰 것이 소고이고, 작은 것을 법고라 한다.

꽹과리는 다른 지역의 것과 같고, 그 잽이는 상공[상쇠], 부쇠, 삼쇠라 부른다. 징 역시 다른 지역의 것과 같으나, 끈을 다는 방법이 다르다. 즉 전두리에 뚫린 구멍에 끈을 달고 길이 한 뼘 정도의 막대기에 끈을 길게 맨 다음 어깨에 메고 치기도 한다. 북과 장구도 다른 지역의 것과 같다.

소고는 소구라고도 부르며, 크기가 작은 법고[벅구]와 구별된다. 통의 지름이 26㎝, 높이는 6㎝ 정도이며, 양쪽에 개가죽을 대고 등나무 줄기로 얽어맨다. 길이가 9㎝ 가량 되는 자루를 달되 얇은 철판 다섯 장을 겹쳐 꿰어 매달아서 소고를 칠 때 ‘철철’하는 소리가 나도록 한다. 소고 채는 길이 30㎝쯤 되며 손잡이 끝에 명주로 40㎝ 정도의 수실을 단다. 잽이는 상소고에서 끝소고로 구분해서 부른다. 법고는 소고보다 작고 흔히 벅구 또는 미지기라 부른다. 법고 통은 지름이 18㎝, 높이가 4㎝ 정도이며, 개가죽을 대고 등줄기로 얽어맨다. 소고에는 자루를 달지만, 법고는 자루를 달지 않고 길이 26㎝ 가량 되는 끈을 달고 왼손목과 손가락에 끈을 감아쥔다. 법고 채는 매우 가는 막대기를 쓰며, 잽이는 상법고에서 끝법고까지 구분해서 부른다.

호적은 다른 지방의 것과 같은데, ‘날나리’라고도 부른다. 악기의 세부적 명칭으로 벌렁이를 ‘나포’라 하며, 촉꼬지를 ‘꼭도’라 하고, 서(舌)를 ‘주레’라 한다.

농기는 다른 지방 농기와 대체로 같으나, 크기가 조금 작다.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글씨를 쓰는데, 큰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한자로 내려 쓰며, 작은 글씨로 강릉 농악보존회 또는 소속 부락을 표시한다. 옆에는 검은색의 지네발을 달고 밑에는 청·황·홍의 삼색 술을 길게 단다.

[편성]

강릉농악의 편성은 농기수 1명, 호적수 1명, 꽹과리수 3명, 징수 2명, 장고수 2명, 북수 3명, 소고수 8명, 법고수 8명, 그리고 무동 8명으로 편성된다. 옛날에는 포수나 화동(花童)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열두 명의 상모수가 따로 포함되기도 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강릉농악에는 정초의 지신밟기, 정월 대보름날의 달맞이. 다리밟기, 2월 좀상날의 다리밟기, 횃놀이, 걸립굿, 봄농사가 끝난 뒤의 화전놀이, 못질, 김질먹기, 단오날 대관령 성황제의 길놀이 농악, 못질과 김질을 마친 후 뱃놀이 등이 있다.

지신밟기정월 대보름부터 3~4일 간 마을의 농악대가 집집마다 농악을 치며, 덕담·고사를 하는 것이다. 지신밟기에 앞서 당에서 서낭굿을 친다. 서낭굿을 친 다음에는 굿패들이 서낭기를 들고 풍물을 치면서 지신밟기를 하는데, 집에 들러 먼저 문굿을 치고, 고사반을 한 다음, 마당굿을 한다. 대가 댁에서는 마당굿에서 멍석말이, 황덕굿, 진놀이, 농사풀이, 자매놀이 등 갖가지 놀이를 한 다음, 마당굿, 조왕굿, 성주굿, 측간굿, 우물고사, 장독굿 등을 하며 집안 구석구석 하지만, 규모가 작은 집에서는 고사만 지내기도 한다. 강릉시 홍제동 농악의 지신밟기는 14일 밤에 뒷산에 있는 여성황사(女城隍祠)에서 미리 서낭굿을 치고, 15일 밤부터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한다.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나 다리밟기[횃불놀이]의 농악은 각 마을의 농악패들이 달이 뜨기 전에 횃불을 들고 산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 다음, 횃불을 들고 농악을 치면서 마을로 내려와 마을 앞에 있는 다리를 밟는다. 다리밟기를 마치면 마을로 돌아와 농악을 치며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놀았다 한다. 음력 2월에도 답교농악을 쳤는데, 좀상날의 다리밟기나 횃불놀이가 그것이다. 강릉 지역에서 2월 좀상날 행사가 가장 활발하게 전승되는 곳은 사천면 진리였다 이곳에서는 1년 동안 마을에 우환이 없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음력 2월 초엿새 좀상날[좀생이날]이 되면 다리밟기와 횃불놀이를 즐겼다.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다리에 모여 그 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다리밟기 농악을 즐겼다.

걸립굿은 지역사회의 공공기금을 거두기 위하여 걸립패를 구성해서 걸립굿을 치는데, 예전에는 절걸립도 하고 서낭걸립, 다리걸립, 서당걸립도 했지만, 절걸립은 거의 없어지고 다리걸립이 많이 남았다. 걸립을 하게 되면 먼저 영좌(領座), 대방(大房), 청수 등의 임원을 정하고 이들이 상쇠에게 굿패의 조직을 일임한다. 걸립을 하기 전에 서왕을 모신다고 한다. 서낭기[농기(農旗)]를 앞세워 풍물을 치며, 서낭당에 가서 서낭기를 세우고 주과포로 제상을 차려 잔을 올리고 농악을 치며 절을 두 번 하고 서낭굿을 친다. 서낭굿은 마당굿과 같이 멍석말이, 황덕굿, 진놀이, 농사풀이, 자매놀이 등을 하고, 다음날부터 마을마다 돌며 걸립을 시작한다. 다른 마을에 걸립패가 들어갈 때는 특별한 의식이나 허가 과정이 없다. 어느 곳에 다리걸립을 한다고 하면 그 다리를 이용하는 마을에 먼저 통보가 되거나 미리 알고 있다. 걸립패가 마을에 들어가면 농악대가 있는 동네는 굿을 치면서 동구로 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인사굿을 한다. 인사굿을 마치면 걸립패들은 그 마을 서낭당에 들러 서낭굿을 친다. 동네에 들어가 집집마다 들러 지신밟기와 같은 고사굿을 친다.

화전놀이 농악은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모심기 전에 봄 농사를 마무리 지어놓고 화전놀이를 가서 놀면서 치는 농악이다.

못질, 김질의 농악은 강릉 지방의 두레농악을 가리킨다. 모심기와 김매기에 두레를 짜는 것을 강릉 지방에서는 ‘질을 짠다’고 하며, 모심기가 끝나면 못질을 먹고, 김매기가 끝나면 김질을 먹는다’ 하여 날을 받아 음식을 장만하고 온갖 풍물을 잡히면서 하루 종일 논다. 못질, 김질 등의 농악대 구성은 농기, 날나리, 꽹쇠 2, 징 1, 장고 1, 북 1로 편성되며, 소고와 법고, 무동은 딸리지 않는다. 농사철의 두레농악은 들에 나가고 들어 올 때, 모를 심을 때, 김을 맬 때 친다.

못질먹기와 김질먹기는 다른 지방의 호미씻이와 같은 것으로, 못질과 김질 일을 끝내면 ‘질먹기’를 했다. ‘못질’은 2~3일 정도를 먹고, ‘김질’은 5~6일 정도를 먹고 노는데, 힘든 농사일을 끝내고 좋은 음식을 차린 큰 상을 받아서 먹고 즐겁게 노는 것이다. 여름농사가 마무리 된 후 7월 이후에 배 위에서 마지막으로 농악을 잡히고 노는 것을 ‘뱃놀이’라고 한다.

[현황]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농악에는 두산동 농악대·월호 평동 농악대·저동 농악대와 사천 답교 농악대 등이 포함되었고, 예능 보유자 등도 각 농악대에서 골고루 참여하고 있다.

강릉농악의 명인은 아래와 같다.

박기하(朴基河)[1920년생]는 홍제동 농악대 상쇠이며, 1985년 12월 1일에 강릉농악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강릉 농악 보존회 고문을 역임했다.

김용현(金龍泫)[1929~2003]은 강릉시 사천면 진리 하평 농악대 상쇠이며, 1989년 12월 1일에 강릉 농악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강릉 농악 보존회장을 역임했다.

정희철(鄭喜澈)[1934년생]은 월호 평동 농악대 상쇠이며, 2006년 6월 19일 강릉농악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차주탁(車柱鐸)[1940년생]은 저동 농악대 상쇠이며, 1992년 7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강릉농악 조교로 인정되었다.

최동규(崔東圭)[1942년생]는 두산동 농악대 상쇠이며, 강릉 농악 보존회의 유일한 쇄납연주자이다. 1996년 7월 1일에 국가무형문화재 강릉농악 교육 보조자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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