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106
한자 崔世昌妻江陵金氏旌閭
영어음역 Jeolbu Choi Sechang Cheo Gangneung Kimssi Jeongnyeo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Virtuous Lady Kim from Gangneung, Choi Sechang's wif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290번지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시기/연도 1521년(중종 16)연표보기 - 강릉:최세창 처 강릉김씨 정려 건립
건립시기/연도 1929년연표보기
성격 정려
양식
관련인물 최세창(崔世昌)
비문찬자 신광한(申光漢)
소재지 주소 강릉시 대전동 290번지

[정의]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는 최세창(崔世昌)의 부인 강릉김씨의 열행(烈行)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旌閭).

[개설]

강릉최씨(江陵崔氏) 최세창의 처 강릉김씨는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겼으며, 남편에게 지극히 순종하였다. 남편이 죽자 며칠 동안 남편의 시신을 껴안고 자신도 따라 죽을 결심을 하여 치마 한 폭을 찢고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관에다 넣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관에다 물들이고 같이 묻히겠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상중에는 세수도 빗질도 하지 않았고 이빨이 보이도록 웃지 않았다. 아침저녁에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올렸으며, 음식을 마련하여 묘에 가서 울기를 10여 년이나 했다. 이 사실이 알려져 정려를 받았다.

[건립경위]

최세창 처 강릉김씨는 1517년(중종 12) 정려를 받았으며, 강릉부사 이운(李耘)이 정려비를 세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1521년(중종 16) 강릉부사 박인(朴認)에 의해 열녀비가 행정리에 세워졌다. 부인의 행적은 부인의 아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당시 삼척부사를 지냈던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이 지었다. 연곡면 행정리에 세워진 정려각은 1926년 세워진 것인데 1962년 행정리 지역 도로 개설로 인해 현재의 위치인 강릉시 대전동 290번지로 옮겼다.

[형태]

현재 정려각은 목조와가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으며, 비각 상량에는 “정려후육갑자오십이년기사사월 일(旌閭後六甲子五十二年己巳四月 日)”이라 새겨져 있다. 안에는 ‘생원 최세창 처 절부 강릉김씨지려(生員崔世昌 妻 節婦 江陵金氏之閭)’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밖에는 ‘생원 최공세창 부인 절부 강릉김씨지려표(生員崔公世昌 夫人 節婦 江陵金氏之閭表)’라는 제목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려각 안에는 열행의 행적을 적은 려표와 이건 사실을 적은 이건기(移建記)가 있다. 려표는 받침돌 위에 높이 165㎝, 너비 91㎝, 두께 24㎝인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올렸다. 비문의 마모가 심하여 원 비석 옆에 이건기를 적은 새 비석을 나란히 세웠는데, 새 비석은 받침돌 위에 높이 178㎝, 너비 61㎝, 두께 30.5㎝인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올렸다.

[금석문]

원 비의 전면에는 통정대부 행삼척부사겸강릉진병마동첨절제사(通政大夫行三陟府使兼江陵鎭兵馬同僉節制使) 신광한이 쓴 ‘생원 최공세창 처 절부 강릉김씨지려(生員 崔公世昌 妻 節婦 江陵金氏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새 비의 전면에는 ‘성균관생원 강릉최공 휘세창지부인 절부 지려표(成均館生員 江陵崔公 諱世昌之夫人 節婦之閭表)’라고 새겨져 있다.

1962년 이건 사실을 적은 이건기는 15세손 김헌규(金憲圭)가 짓고, 16세손 김종원(金鍾遠)이 썼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절부의 행적 비교·검토와 강릉 지역 토성간의 통혼관계 고찰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