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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진리-지리적 환경과 역사-자연환경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T03006
한자 安仁津里-地理的環境-歷史-自然環境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집필자 김기설

[자연환경]

안인진리화비령괘방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만나 바닷가에 이르고 그 끝에 있다. 산줄기 끝에는 해령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해령산군선강 하구에 맞닿아 있고, 이곳은 강동 8경의 하나인 '봉도어선(烽島漁船)'에 해당되는 곳이다. 예전에는 강릉 김씨들의 정자가 있었다.

마을 뒤에 있는 괘방산정동진리안인진리 사이에 있는 높이 339m의 산으로, 산줄기의 생김새가 과거에 급제하면 급제자의 명단을 붙여놓은 방처럼 생겼다고 한다. 이 산줄기 때문에 강릉지역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송촌 뒤로 뻗어 있는 산줄기에서 괘방산을 지나 방재까지 이어지는 괘방산 등산로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바다를 끼고 있다. 이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하면 확 트인 시야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정동진리에서 입산하는 방법과 안인진리에서 입산하는 방법이 있는데 2시간, 3시간, 4시간, 5시간 등 시간을 정해서 등반할 수 있다. 마을에서 안인 통일공원으로 가는 등산로, 정동진 등명낙가사로 가는 등산로, 정동진리로 가는 등산로, 임곡리 청옥산으로 가는 등산로, 방재로 가는 등반로 등 다양한 등산로가 있다. 잔 소나무를 헤치며 바다를 보고 등반하기 때문에 산행의 맛도 즐겁다.

마을은 군선강 하구 남쪽에 있는데, 군선강강동면 언별리 단경골 안쪽 만덕봉 장구목이에서 발원하여 모전리, 안인리에서 넓은 들을 이루고, 안인진리 명선문(溟仙門)에서 바다로 빠진다. 군선강 하구 남쪽에는 해령산과 포구가 있고, 조선조 성종 때에는 대포동에 안인포만호가 있었다. 군선강은 물이 깨끗하여 고기들이 많고 주변 경치도 좋아, 신라 때 한송정에 공부하러 왔던 화랑들이 풍호에서 뱃놀이를 하다 무리를 지어 이곳까지 거슬러 와 놀았다고 한다. 군선강 하구 바닷가에 염전이 있었는데, 가로 30m, 세로 15m 정도의 넓이로 모랫벌을 파고, 찰흙으로 바닥과 벽을 잘 발라서 바닷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하였다. 이렇게 만든 염전에 바닷물을 퍼서 부어두면 여러 날에 걸쳐 햇볕에 바닷물이 증발되어 소금기만 남게 된다. 그러면 끌개로 소금기를 밀어 한 곳에 쌓아두고 다시 바닷물을 퍼붓는다. 여러 차례 반복하여 바닷물을 퍼 넣고 졸이면 소금이 된다.

군선강에는 명소가 있는데, 먼저 송촌 앞에 군선소가 있다. 군선소는 수심이 깊어 명주꾸리 하나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고 하는데 용이 이곳에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예전에 소 옆에 큰 나무가 있었는데, 저녁이 되면 가물치가 나무 위에 올라가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고도 한다. 어느 해 바닷물이 군선소까지 올라와 가물치들이 다 죽은 다음부터는 짐승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빨래소는 군선강 하구 명선문 앞에 있던 소다.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빨래를 했다고 한다.

명선문은 암벽으로 군선강 하류인 해령산 북쪽 끝 바닷가에 있다. 암벽에는 조선조 정조 때 강릉부사 이집두가 1790년에 ‘溟仙門(명선문)’이라 쓴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외 계와 계원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신라 때 한송정에서 공부하던 화랑(영랑·술랑·안상랑·남석랑)들이 이곳에서 바다로 드나들며 호연지기를 길렀다고 하는데, 명선문은 ‘신선들이 큰 바다로 향하던 문’이라는 뜻이다.

바닷가에 있는 명소로는 허리대(許李臺)가 있는데, 허리대는 마을 남쪽 바닷가에 있는 넓은 바위다. 원래는 100여 명이 올라앉을 수 있을 만큼 넓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영동선 철로를 만들며 바위 일부를 깨서 석축으로 쓰면서 크기가 작아졌다. 조선조 세조 때의 장수인 허종과 이륙의 성을 따서 허리대란 이름을 지었다. 『임영지』에 보면 ‘강릉부 남쪽 25리 되는 안인 바닷가에 있었으며 앉아서 즐겨 놀 수 있었다. 세조 때(1460년 무렵)에 허종(許琮)과 이륙(李陸)[1438~1498]이 야인의 난을 평정하고, 배를 타고 지나가다가 이곳에서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륙의 시가 있으며 부사 허경이 ‘허리대’라고 다시 새겨 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부 남쪽 2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허리대 부근에 영하대(瀛河臺)가 있으며 바위 위에 초서로 영하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예전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흘러들어 멋진 경관을 이루었는데 기찻길이 나면서 지금은 경관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영하대 부근에 있는 구로대(九老臺)는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예전에 강동면에 사는 선비 가운데 80세 이상 된 9명이 모여 시문을 지어 서로 촌평도 하고 풍류도 즐기며 우정을 나누었다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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