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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787
한자 何瑟羅州
영어음역 Haseullaju
이칭/별칭 하서량,철국,예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방행정구역
관련문헌 『삼국사기』|『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의]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개설]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에 설치한 주(州)의 이름이다. 하슬라주는 신라의 동북지방의 군사중심지이며 북방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형성]

삼국시대 신라는 고구려·백제·가야를 상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州)의 설치와 폐지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하슬라가 언제 신라에 속하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 지증왕 13년조에 ‘이찬 이사부(異斯夫)하슬라주 군주(軍主)로 삼았다’ 고 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512년경에는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변천]

556년(진흥왕 17)에는 비열홀주(比列忽州)[지금의 안변]가 설치되었는데, 이는 신라의 동북변의 군사중심지가 하슬라에서 비열홀로 이동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12년 후 다시 비열홀주를 폐지하고 달홀주(達忽州)[지금의 고성]를 설치하는 등 변방지역의 전진과 후퇴에 따라 주(州)가 이동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639년(선덕여왕 8)에는 하슬라주를 폐지하고, 이곳에 하슬라소경(何瑟羅小京)을 설치하였다. 이는 강릉 지역이 변경적인 색채가 희박해지고 행정 중심의 지역체제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658년(태종무열왕 5)에 다시 소경을 폐지하여 주(州)로 환원하고 하서정(河西停)을 설치하였다. 이 때 주를 설치한 이유는 하슬라 지역이 말갈(靺鞨)과 인접해 있어 그들이 자주 쳐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곳이 동해안으로 진출하는 군사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컸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련기록]

『삼국사기 지리지』 권35 「명주조」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명주(溟州)는 본래 고구려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何瑟羅)라고도 썼다."이었는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 가탐(賈耽)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 이르기를, "지금 신라의 북쪽 경계인 명주(溟州)는 대개 예(濊)의 옛 나라였다."라고 하였으니, 전사(前史)에서 부여(扶餘)를 예의 땅이라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 선덕왕 때에 소경(小京)으로 삼고 사신(仕臣)을 두었다. 태종왕 5년, 당나라 현경(顯慶) 3년(658)에 하슬라 땅이 말갈에 연접하였다고 하여, 경(京)을 폐지하고 주(州)로 삼아 군주(軍主)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경덕왕 16년(757)에 명주(溟州)로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영현(領縣)이 넷이었다. 정선현(旌善縣)은 본래 고구려 잉매현(仍買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동(棟)이라고도 썼다. 본래 고구려 속토현(束吐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지산현(支山縣)은 본래 고구려의 현(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그대로 썼다. 지금[고려]의 연곡현(連谷縣)이다. 동산현(洞山縣)은 본래 고구려 혈산현(穴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溟州 本高句麗河西良一作何瑟羅 後屬新羅 賈耽古今郡國志云 "今新羅北界溟州 蓋濊之古國" 前史以扶餘爲濊地 蓋誤 善德王時爲小京 置仕臣 太宗王五年唐顯慶三年 以何瑟羅地連靺鞨 罷京爲州 置軍主以鎭之 景德王十六年改爲溟州 今因之 領縣四 旌善縣 本高句麗仍買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一作棟縣 本高句麗束吐縣 景德王改名 今未詳 支山縣 本高句麗縣 景德王因之 今連谷縣 洞山縣 本高句麗穴山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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