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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 간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772
한자 荷谷簡札
영어의미역 Letters of Hago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강원도 강릉시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정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서
관련인물 허봉
제작연도/일시 1586년연표보기
용도 편지
소장처 장정룡
소장처 주소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7[지변동 123] 강릉원주대학교 국문과

[정의]

조선 중기의 문인 하곡(荷谷) 허봉(許篈)[1551~1588]이 36세 때에 쓴 편지.

[개설]

허봉은 강릉 출신으로 초당 허엽(許曄)의 둘째아들이다. 1568년(선조 1)에 생원, 1572년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가독서를 했다. 33세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기행문 「하곡조천기(荷谷朝天記)」를 1574년에 썼으며, 이듬해 이조좌랑, 1577년 교리, 1583년 창원부사를 역임했다. 창원부사 시절 도승지 박근원, 장흥부사 송응개와 함께 이이(李珥)의 직무상 과실을 들어 탄핵하였다가 함경도 변방 종성에 유배되었다. 후에 함경남도 갑산으로 옮겨졌다.

허봉은 영의정 노수신(盧守愼)과 예조판서 유성룡(柳成龍)의 주청으로 귀양에서 풀렸으나, 강직한 성격 탓에 정치에 뜻을 버리고 백운산에 들어가 젊은이를 모아놓고 글을 가르쳤다. 춘천, 금강산 대명암에서 생활하는 등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객지생활로 황달과 한담을 얻어 동교로 이송되다가 1588년 금강산 생창역에서 38세로 사망하였다.

[구성과 형태]

가로, 세로 31㎝, 한지 1장으로 되어 있다. 머리글은 ‘최참봉댁(崔參奉宅)’이라고 썼으며, 아래에 허봉의 수결이 있다. 전체 편지 53자의 끝에 ‘병술팔월입일일(丙戌八月卄一日)’ 이라고 일자를 밝히고, 내용 끝에는 자신의 이름 끝 자인 ‘봉(篈)’을 썼다.

[내용]

이 편지는 하곡이 사망하기 두 해 전인 병술년(1586년) 8월 21일 최참봉 댁에서 수묵을 보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글을 보낸 것으로, 비교적 간단하지만 정감이 넘치고 힘이 넘치는 필력을 보여주는 편지이다.

[의의와 평가]

허봉은 동생인 허난설헌허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문인이었으나, 일찍이 귀양길에 올라 객사함으로써 그에 관한 자료는 희귀한 편이다. 이 간찰은 허봉이 귀양지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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