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584
한자 朴公達
영어음역 Park Gongdal
이칭/별칭 대관(大觀),강호(江湖),사지(四止)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박시행(朴始行)
어머니 영양남씨(英陽南氏) 남과(南薖)의 딸
아내 김진석(金晉錫)의 딸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470년(성종 1)연표보기
몰년 1552년(명종 7)연표보기
본관 강릉
제향 향현사
대표관직 병조좌랑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 자는 대관(大觀), 호는 강호(江湖)·사지(四止). 부친은 박시행(朴始行)이고, 모친은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과(南薖)의 딸이다.

[생애]

26세 때인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이 되었으나, 수신(修身)과 독서에만 힘쓸 뿐 벼슬에는 뜻이 없었다. 1516년(중종 11) 가을 금강산에 유람 왔던 충암(冲庵) 김정(金淨)박공달(朴公達)을 만나보고 그 사람됨에 탄복하였다. 그리하여 서울에 돌아가 중종에게 그를 적극 추천하여, 1519년(중종 14)에 현량과에 천거되어 홍문관저작과 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1519년(중종 14)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돌아와 박수량(朴遂良)과 서로 왕래하며 경학(經學)을 논하고 학문에 매진하였다. 특히 박수량과 함께 강릉부 사천 해안 근처에 위치한 쌍한정(雙閒亭)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1545년(명종 즉위년) 8월에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68년(선조 1)에는 영의정 이준경(李浚慶) 등의 주창(主唱)으로 천거과에 추천되었으나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경호(鏡湖) 산기슭에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