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1171
한자 南廟
이칭/별칭 남관왕묘(南關王廟)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선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남묘 건립
훼손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남묘 소실
복원 시기/일시 1957년 - 남묘 복원
이전 시기/일시 1979년 - 남묘 이전
현 소재지 남묘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로23길 278[사당3동 180-1]지도보기
원소재지 남묘 - 서울특별시 용산구 도동1가 9번지
성격 사당
관련 인물 관우|진인|선조
면적 대지 400여 평|전각 건평 47평[155.37㎡]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중국의 전설적 장군인 관우의 사당.

[개설]

남묘는 조선 시대에 중국의 장군인 관우(關羽)를 제사 지내기 위해 남대문 밖에 세운 사당이다. 신격화된 관우를 관왕, 관성제군(關聖帝君)이라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파병된 명(明)의 유격장(遊擊將) 진린(陳寅)은 1597년(선조 30)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다가 회복하면서 관우가 자신을 보호했다고 여기고 관왕묘 건립을 시작하였다. 이후 명군과 조선 측 선공장(善工匠)에 의해 꾸준히 건립이 진행되어 1598년(선조 31) 5월 13일에 관왕의 생일을 맞아 준공 축제를 거행하였다. 이후 국가 제사로 매년 경칩과 상강에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를 지내다가 1908년 폐지되었다.

남묘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로 관리가 넘어가면서 1,300평이나 되던 부지가 줄어들었다. 1913년에 서철무씨가 남묘유지사(南廟維持社)라는 조직을 결성하면서 조선총독부로부터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서철무의 집안에서 남묘를 계속 관리하다가 2020년 현재 손자인 서동진씨가 관리하고 있다. 6·25전쟁 때 큰 전각이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957년 서동진씨의 부친이 재건하여 제2전각에 모셨던 성제를 다시 모셨으며, 1979년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으로 옮겼다. 이후 타 지역으로 다시 이전하였으나 이전한 지역은 불분명하다.

[위치]

원래의 위치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도동1가 9번지였다.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7년에 재건하였고 1979년에 도동지구 재개발을 진행하면서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로23길 278[사당3동 180-1]로 이전하였다. 현재 위치에는 남아있지 않으며 타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형태]

남묘는 대지 400여 평에 전각의 건평은 47평[155.37㎡]이었다. 남묘 입구에는 정문이 있고 양 옆으로 소문이 있다. 남묘에는 현성전과 서동진씨 개인 가정집과 부속건물, 관리인 집이 있었다.

돌담에 기와지붕을 한 현성전은 예전에 지은 건물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현성전 내부 중앙에는 관운장 세 분이 모셔져 있고 왼쪽에는 옥천대사가, 오른쪽 벽에는 7점의 무속화가 걸려 있다. 관운장과 서산대사, 무속화를 모신 앞에는 제단이 있으며 관운장 앞에는 양산이 꽂혀 있다. 관운장은 대추빛 얼굴에 노란색 도포를 입고 있다. 관운장 세 분 중 가운데 있는 신상이 양쪽에 있는 신상보다 훨씬 크게 조성되어 있다. 남묘와 동묘에는 각각 관운장의 생전의 모습과 사후 모습을 모셨는데 그 이유가 임진왜란 때 관운장이 남대문에 출현해서 왜군을 크게 물리쳤고, 동대문에서는 사신장에 맞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의례]

조선 시대에는 관리를 파견하여 궁궐에서 악사들이 나오고 문무관이 양쪽으로 서서 제향을 올렸으나 1908년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재단 이사장과 이사들이 중심이 되어 제를 지낸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으로 초헌, 아헌, 종헌을 하고 축문을 태운다. 남대문 근처에 있을 때는 소지를 태우는 곳이 따로 있었으나 묘당 뒤에서 종이를 태운다. 정초 다례의 경우 그믐날 자시에 축문 없이 지내지만 경칩, 상강의 경우는 축문이 있다. 경칩, 상강은 보통 낮 12시, 청명, 동지에는 아침 8시에, 관우의 탄신일에는 자시(子時)에 지내 제를 지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정기적인 의례 외에도 서동진씨 댁에서 아침마다 수라를 올린다. 밤 11시에는 문을 열어 개문을 알리고 관운장의 취침 시간인 새벽 6시에는 문을 닫는다. 문을 열고 닫을 때는 북을 쳐 알린다.

제를 맡아서 지내는 사람을 제주(祭主)라 부르는데 제주는 보통 재단 이사장이 맡고 제관은 이사장들이 맡았다. 제물은 예전에는 돼지나 염소를 잡아서 크게 진설하였으나 요즘은 보통 시루떡, 절편,전병, 생선·닭고기·소고기의 삼적, 사과, 배, 감 등의 삼색 과일, 포, 산적, 밤, 대추, 편, 적 등을 올린다. 정초와 5월 13일, 6월 24일, 10월 19일에는 다른 때보다 크게 지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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