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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598
한자 申磼
이칭/별칭 백준(伯俊),독송(獨松),충헌(忠獻)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선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1년연표보기 - 신잡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3년 - 신잡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0년 - 신잡 호조판서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02년 - 신잡 병조판서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09년연표보기 - 신잡 사망
묘소|단소 신잡 묘소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969
사당|배향지 노은영당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969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평산
대표 관직 호조판서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묘소가 있었던 조선 전기 문신.

[가계]

신잡(申磼)[1541~1609]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자는 백준(伯峻), 호는 독송(獨松)이다. 고려의 개국 공신이고 평산 신씨 제정공파(齊靖公派)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이다. 주부(主簿) 신말평(申末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신상(申鏛)이고, 아버지는 신화국(申華國)이며, 어머니는 윤회정(尹懷貞)의 딸이다. 이산해(李山海)의 문인이며, 둘째 동생인 신립(申砬)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때 신잡의 둘째 아들 신경지(申景址)도 신립을 돕다가 탄금대에서 전사하였다. 셋째 동생인 신할(申硈)은 임진왜란 때 임진강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활동 사항]

1568년(선조 1)에 28세 나이로 증광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43세 되던 1583년(선조 16)에 문과 정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지평(持平)·우부승지 등을 지냈다. 이후 이조와 형조의 참판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우승지로 중앙에 있으면서 같은 해 4월에 선조가 파천하려 하자, 격렬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결국 파천하게 되자, 왕을 호종하였다.

1593년에는 병조참판을 거쳐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나갔다. 1596년 중앙으로 돌아와서 좌·우 참찬(參贊)을 차례로 지냈다. 1600년(선조 33)에는 호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 겸 세자빈객이 되었다. 다음해에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가 곧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병으로 면직되었다. 1602년(선조 35)에 병조판서가 되어 내직으로 돌아왔는데 노쇠함을 이유로 동궁빈객은 사퇴를 청하여 선조의 윤허를 받았다.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에 늙고 병든 것을 이유로 개성유수에서 사직하여 관력을 마감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 사망하였다.

[묘소]

신잡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었으나 1975년 도시 계획으로 인해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충청북도 진천군에 사당으로 세워진 노은영당(老隱影堂)은 1615년(광해군 7)에 건립되었으나 1818년(순조 18)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를 1856년과 1966년에 중수한 것이 현재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969에 있는 사당이다. 순조 때 충헌(忠獻)으로 시호가 내려졌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3.13 내용 오류 수정 신잡의 둘째 동생 신립은 탄금대에서 셋째 동생 신할은 임진강에서 전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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