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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037
한자 佛敎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승훈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불교에 대한 개관.

[개설]

동작구의 불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0%, 종교 인구의 약 22%에 달한다[2015년 인구총조사 기준]. 관내에는 국립서울현충원 내에 있는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 서달산 달마사(達摩寺) 등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사찰과 포교원이 있다.

[전근대 시기 동작구의 불교]

동작구에 현존하는 사찰들 가운데 전근대에 연원을 두고 있는 절로는 호국지장사, 사자암(獅子庵), 청련암(靑蓮庵), 미륵암(彌勒庵)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호국지장사청련암 등은 그 전설적인 연원이 고려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호국지장사의 전신인 갈궁사(葛弓寺)는 신라 말 도선(道詵)이 창건한 것이라 전해지며, 청련암 또한 삼한고찰(三韓古刹)이라 하여 신라 시대 이전의 기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고려 시대 이전의 문헌 자료에서는 이들 사찰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렵다.

15세기의 인물인 윤자(尹慈)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금천(衿川) 동쪽에 산이 솟아 있는데 그 형세가 북으로 달려가 마치 걸어가는 범과 같고, 돌이 높이 솟아 있어 세상에서 이를 ‘호암(虎巖)’이라 부른다. 술가(術家)가 형극을 살펴보고, 바위 북쪽 모퉁이에 절을 세우고는 호압사(虎押寺)라 이름하였고, 그 북쪽으로 7리를 가면 다리가 있는데 궁교(弓橋)라 이르고, 또 그 북쪽 10리 쯤에 암자가 있어 사자암(獅子菴)이라 부르니, 이는 그 행동하는 범의 형세를 제압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것은 오늘날 국사봉(國師峰) 기슭에 있는 사자암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봉은 원래 여기에 언급된 궁교의 이름을 따서 ‘궁교산(弓橋山)’이라고 불렀는데, 무학(無學)사자암에 머물렀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국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또 사자암은 남쪽의 호압사[오늘날의 금천구 시흥2동]와 더불어 호암산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서 건립되었다고 한다. 구전전승에서도 무학은 만리현[오늘날의 중구 만리동]의 지세가 밖으로 뛰어 달아나는 백호(白虎)의 형상을 한 것을 보고 관악산에 호압사를 짓고, 또 사자 형상을 한 산에 사자암을 지어서 백호의 움직임을 막고자 했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유행한 비보사찰(裨補寺刹) 신앙의 흔적이다. 그것은 특정한 위치에 사찰을 건립함으로써 풍수상 불리한 지세를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지역은 한양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사찰을 지어 국가의 도성을 안정시키기 위한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특정한 집안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사찰도 있었다. 세조 때의 노사신(盧思愼)[1427~1498]은 부친의 묘를 쓴 후 그 옆의 움막에 살고 있던 승려에게 시주를 하고 염불을 부탁하여 오늘날의 청련암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이 절은 ‘노씨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상인인 단씨(段氏)에 의해 건립되어 이후로도 속인(俗人)들에 의해 관리되었다고 전해지는 상도동미륵암(彌勒庵)이 있다.

왕실의 후원을 받는 사찰도 있었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안에 있는 호국지장사는 본래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昌嬪 安氏)의 원당(願堂)이었다. 왕실 원당에는 절 안에 위패를 봉안한 어실(御室)을 두고 정기적으로 불공을 드렸다. 창빈의 손자인 선조는 이곳을 할머니의 원당으로 삼고 ‘갈궁사(葛宮寺)’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절은 이때 조포사(造泡寺)로 지정되었다. 조포사는 문자적으로는 ‘두부를 만드는 절’이라는 의미이지만, 실제로는 제향(祭享)에 쓰이는 두부만이 아니라 제사와 도배, 창호, 문서 등에 쓰이는 각종 종이와 제기, 향과 향로 등의 제수용품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1872년에 발간된 지방지도에는 오늘날 동작구 지역에 이 사찰만이 ‘화장사(華藏寺)’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이 일대에서 오늘날의 호국지장사가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찰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근현대 시기 동작구의 불교]

일제 강점기 이후 본·말사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현재의 동작구 관내에 있던 사찰들은 봉은사(奉恩寺)의 말사로 소속되었다. 여기에는 화장사[현 호국지장사], 청련암, 사자암이 포함된다. 이 시기에는 기존의 사찰들이 중창되는 한편, 포교당 성격의 소규모 사찰들이 활발하게 건립되었다. 본래 관악산 연주암(戀主庵)의 포교당으로 세워진 본동극락정사(極樂精舍)가 그 대표적인 예다. 1930년대에 건립된 흑석동달마사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근대 사찰이지만 20세기 한국불교의 핵심적인 인물인 만공(滿空)의 문중이 주도하여 운영하며 특히 중시되었다.

6·25전쟁 이후 국립서울현충원이 조성되면서, 현충원 부지에 있던 화장사[오늘날의 호국지장사]는 이전을 피했지만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한편 인근의 달마사는 20세기 후반 이후 활발한 증축을 거치면서 오늘날 동작구의 대표적인 대규모 사찰이 되었다. 이후 1988년 전통사찰보존법[현재의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동작구에서는 호국지장사, 사자암, 달마사가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20세기에 건립된 동작구의 또 다른 특수한 사찰로는 공군사관학교 내의 군종사찰인 성무 호국사를 전신으로 하는 보라매법당이 있다. 이곳은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이전한 이후 인근 아파트 밀집지역의 신도를 적극적으로 모집하여 동작구의 대표적인 도심사찰이 되었다.

관내의 불교단체들로는 동작구불교사암연합회, 동작구청불심회, 동작경찰서동불회 등이 조직되어 정기적인 연합법회와 활발한 신행 활동을 하고 있다.

[동작구 불교의 특징]

조선왕조의 한양 천도 이후 도성 인근 지역이었던 오늘날의 동작구에는 비보풍수와 왕실불교의 수요를 담당하는 사찰들이 건립되었다. 또한 지역 공동체와 밀접하게 연계된 소규모 사찰들이 지역민들에 의한 신행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현대 대도시 환경 속에서 동작구의 불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는 장례와 추모의 종교로서의 기능이다. 호국지장사국립서울현충원 내의 유일한 종교시설로서 묘역의 관리와 유가족들의 참배를 지원하고 있다. 20세기에 건립된 달마사 또한 2012년 이후 현대적인 봉안당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는 도심 포교원의 증가다. 전통적인 형태의 사찰은 20세기 이후 지역 개발과 함께 크게 줄었으나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방문하여 법회, 기도, 명상수행에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포교원들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8.02 내용변경 [전근대 시기의 동작구의 불교] 노진(盧禛)[1518~1578] 관련 구절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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