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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달성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080
한자 製造業[達城郡]
영어공식명칭 Manufacturing Industry
이칭/별칭 공업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광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재료에 기계적·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투입된 원재료를 성질이 다른 제품으로 전환하는 산업 활동.

[개설]

우리나라 광공업의 역사는 삼국 시대나, 통일 신라 시대 때에 창작된 금속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7세기 첨성대(瞻星臺)를 만든 공법 및 토기나 청동기, 청와, 백자 등을 만든 뛰어난 기술, 세계 최고의 인쇄술, 그리고 거북선을 만들어 낸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는 광공업 기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적 계급에 얽매여 공장인(工匠人)이 천대를 받는 풍토 하에서 광공업 수준은 경미한 수공업이나 대장간, 땜장이가 고작이었으며, 일제 강점기 하에서는 일제의 억압으로 민족 기업은 자본 축적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안타깝게 해방 이후 남북 분단과 6·25 전쟁으로 우리나라 광공업 분야의 발전에 크나큰 장애와 시련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 주도로 경제 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나 그 중심은 서울 및 임해 지역이었으며, 내륙 지역인 대구 지역은 소외된 편이었다. 대구 지역은 1970년에 제3공단이 가동되면서 지가 상승과 공업용수 부족으로 그 당시 달성군 지역인 월배와 화원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1970년대 말의 성장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경제적 파급 효과가 지방으로 확산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의식이나 가치관이 지방 주의적 성향으로 변모하면서 지역의 형평성에 입각한 상향적 지역 개발의 요구가 강하게 대두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제 실시를 앞둔 시대적 상황도 지방 재원의 확충, 대도시 영향으로부터의 탈피 등으로 인해 경제 개발 정책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적 요구의 일환으로 제시된 한 방안이 지방 공업 단지의 육성이다. 즉,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지방에 공업 단지를 조성함으로써 고용 효과, 인구의 증가, 지방 경제의 활성화, 지역 내 자원 개발 등을 통하여 지역 발전을 꾀하고, 지역 재정을 확충함으로써 지방화 시대에 부응하고자 한 것이다.

1980년대~1990년대 초반까지의 지역 산업 정책은 수도권의 과밀 집중과 지방 경제의 침체에 따라 수도권의 집중화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수도권 정체법의 제정[1982년]으로 구체화되었다. 또한 중소기업 정책의 본격화로 중소기업 진흥 기금과 중소기업 진흥 공단의 설립, 지역 균형 발전 정책에 대한 정책 방향의 정립으로 지역 경제의 발전이 국가 경쟁력의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제2차 국토 종합 개발 계획 수정안을 수립하였으며, 이를 통해 지역 단위의 균형 개발 전략이 채택되었다. 또한 지역 산업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990년「공업 배치 및 공장 설립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였으며, 1994년「지역 균형 개발 및 지방 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되었다.

[변천]

중세 사회는 국가의 ‘무본억말책(務本抑末策)’에 의하여 처음부터 상공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지방에서는 상공업이 대개 영세농 경영과 결합된 가내부업으로서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여 가족 단위로 생산하는 일이 많았고, 그 중의 일부가 공물로 공납되고 또는 물물 교환 방식으로 거래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농민의 수공업 외에 사업적인 수공업자를 공장이라 하였는데,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거하여 이 지방의 공장 정원을 적기하면 대구부(大邱府)에는 야장(冶匠), 궁인(弓人), 시인(矢人), 피장(皮匠), 목장(木匠), 유장(鍮匠), 칠장(漆匠), 유구장(油具匠), 갑장(甲匠), 묵장(墨匠) 각 1명과 석장 2명, 지장 4명이 있었으며, 현풍현(玄豊縣)에는 야장, 궁인, 시인, 목장, 석장(席匠), 칠장, 유구장 각 1명과 지장 3명 등이 있었다.

조선 전기 농촌의 수공업 가운데 가장 널리 발달한 것은 도자기와 함께 농기구, 직포, 직마(織摩), 제지업 등이며, 남경여직(南耕女織)의 농촌 사회에서 직포업은 농촌수공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농가에서 주식을 재배하는 전답과 함께 금포(綿田), 마포(麻田), 우전(芋田), 상전(桑田)에 있어 농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직포는 대구·현풍 지방 할 것 없이 부녀자에 의해 보편적으로 영위되고 있었다. 그러나 유통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중세 사회에서는 수공업의 침체와 영세한 농업 생산 아래에서는 그 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화(轉化)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공업 위주의 대구 지역 공업은 1905년 공장제 공업 시대를 맞이했다. 김윤성(金潤聲)에 의해 세워진 기와 공장[자본금 3,000원]이 근대적인 기업의 효시라 할 수 있으나 아직 근대적인 경영 기법을 체득하지 못하였으며 자본이 영세하고 기술이 낙후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경제에의 종속화와 민족적 차별 정책으로 민족 기업의 발전에 제약이 되었다. 특히, 1910년부터 시행된 「조선 회사령」에 의한 차별적인 회사 설립 허가제라든가 금융 정책 등으로 민족 기업가의 자본 축적이 저해되었다. 달성군 공산면 지묘동에서 수직기, 족답기 1대로 베를 짜던 추인호가 대구시 인교동에 족답기 20대로 동양 염직소를 설립하였으며, 일본인에 의해 최초로 세워진 제사 공장은 1918년 2월 야마주제사[山十製絲(산십제사)] 대구 제사소이며, 해방 당시까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제사 공업이 주 업종으로 성장해 왔다. 이처럼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섬유 산업이 태동하게 된 계기는 예로부터 양잠업이 성행했던 경상북도 성주, 군위, 예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원료, 내륙 지방의 노동력, 공업용수 등은 오늘날에도 대구를 섬유 도시로 성장하게 된 초석이 되었다.

달성군의 제조업은 영세하였으나 1968년 이후 지가의 상승과 공업용수난 때문에 대구 시내의 공장들이 달성군의 월배와 화원권으로 분산되기 시작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77년 기준 달성군 공장 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공장 수는 430개사이며, 종업원 수 1만 5250명이었으며, 이중 섬유 부문이 334개사 1만 1318명으로 각각 전체 77.7%, 74.2%를 차지하고 있다. 섬유 이외 산업으로는 기타 잡화 공업[15.1%], 기계 금속 및 화학 공업[3.7%] 등 도시형 영세 소공업이 있었으나 그 비중은 낮았다. 이러한 공업은 도시화 및 산업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성장하였으나 자본과 경영의 영세성, 기술의 낙후성 때문에 경기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81년 7월 1일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달성군의 월배읍, 공산면, 성서읍이 대구시로 편입되면서 달성군의 공장 수는 1981년 78개 업체, 종업원 수 4,512명의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읍·면별 공장 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화원 39개 업체, 현풍 12개사, 가창 11개사, 논공 6개사 순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1990년대 들어 지역 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 제정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지역 중심의 경제 활성화 정책[1997년]과 산업 발전법 제정과 지역 산업 진흥 계획 수립, 그리고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이 추진되었다. 달성군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논공 공단, 달성 2차 산업 단지, 대구 테크노폴리스, 성서 5차 첨단 산업 단지, 대구 국가 산업 단지를 순차적으로 조성을 통해 다양한 기업체가 입주하여 기업 활동을 통해 대구 경제를 추동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현황]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제조업의 현황을 살펴보면 2011년 기준 사업체 수[10인 이상 기준] 563개에 총 2만 4481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해당 업체들이 연간 약 2조 6835억 원 정도의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사업체 수는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과 섬유 제품 제조업이 91개 업체, 금속 가공 제품 제조업 78개 업체,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 71개 업체, 고무 제품 및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 63개 업체, 전기 장비 29개 업체, 제1차 금속 제조업과 펄프·종이 및 종이 제품 제조업이 27개 업체 순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사자 수는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이 6,26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고무 제품 및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 3,774명, 금속 가공 제품 제조업 3,073명,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 2,691명, 섬유 제품 제조업 1,902명, 전자 부품 컴퓨터 영상 음향 및 통신 장비 제조업 1,459명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출하액은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이 2조 1613억 원으로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이 1조 575억 원, 금속 가공 제품, 기계 및 가구 제조업 1조 100억 원, 고무 제품 및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 9777억 원, 제1차 금속 산업 제조업 7194억 원, 펄프·종이 및 종이 제품 제조업 6515억 원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제조업의 수출 실적은 산업 단지가 조성되고 난 후인 1988년부터이다. 1988년 기계 금속, 섬유, 광산물, 잡화류, 석유 화학을 중심으로 약 3억 달러를 수출하였다. 1991년에는 식품 가공업에서 848만 달러, 1994년에는 전기 전자업에서 185만 달러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달성군 수출이 7억 2000만 달러로 1988년 대비 248% 증가하였으며, 기계 금속, 석유 화학, 섬유, 잡화류 등 대부분의 업종에서 증가한 반면, 광산물은 172만 달러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도 기준으로 주요 기업의 수출 실적을 살펴보면 대우 기전 공업이 1억 1000만 달러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세림 제지, 유창 섬유, 대한 중석, 유신 무역, 협신 실업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주요 수출 품목으로는 대호 산업은 C형강, 대우 기전 공업은 발전기, 대덕 직물 등은 나일론 다후다, 신일 산업 등은 폴리에스텔, 세림 제지는 제지, 대한 중석은 중석 등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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