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10
한자 大邱- 王-
영어공식명칭 The story of Daegu and the Flowering Cherry
분야 지리/동식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판권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성모당에 있는 왕벚나무의 문화적 의미.

[개설]

왕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한 낙엽교목이다.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데, 다른 벚나무보다 꽃이 풍성하여서 흔히 ‘화왕(花王)’이라 부른다. ‘왕벚나무’라는 이름도 벚나무보다 꽃이 풍성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벚나무는 왕벚나무인데, 꽃이 먼저 피는 왕벚나무와 달리 벚나무는 잎이 돋을 때 꽃이 핀다. 원산지인 우리나라에는 아주 많은 왕벚나무가 살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전국 곳곳에 왕벚나무를 심어 꽃이 피는 봄철마다 축제를 열고는 한다. 대구광역시에서도 팔공산 순환도로, 달성공원, 앞산네거리 등 도심 곳곳에서 왕벚나무를 만날 수 있다.

[왕벚나무에 대한 오해]

왕벚나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흔히 퍼져 있는 오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왕벚나무가 일본 원산의 나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일부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의 식민 잔재와 연관시켜 왕벚꽃 축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이다. 왕벚나무를 일본 원산으로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일본에서 왕벚나무를 사쿠라(さくら)로 부르면서 일본의 나라꽃, 즉 국화(國花)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또한 1900년 일본의 어느 원예 잡지에서 왕벚나무가 일본 오시마[大島] 지역에 자생하는 것으로 먼저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왕벚나무를 일본 원산으로 오해하도록 만든 사람은 일본의 식물분류학자인 마쓰무라 진조[松村任三][1856~1928]이다. 마쓰무라 진조는 도쿄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도쿄대학교 부설 고이시카와식물원[小石川植物園]의 초대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일본식물명휘(日本植物名彙)』와 『제국식물명감(帝国植物名鑑)』 등의 유명한 저서들을 남겼다. 마쓰무라 진조는 왕벚나무의 학명을 프루누스 이에도엔시스(Prunus yedoensis)라 붙였다. 종소명 ‘이에도엔시스’는 에도[江戶], 즉 도쿄[東京]의 라틴어이니 마쓰무라 진조는 왕벚나무를 ‘에도의 벚나무’라고 표기한 셈이다. 그런데 마쓰무라 진조는 일본 이즈반도의 오시마섬을 원산지로 기록하였지만 실제로는 일본 내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1912년 교토제국대학의 몇몇 학자들이 이즈반도의 식물상을 조사한 결과,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밝힘으로써 최종적으로 일본에 왕벚나무 자생지가 없음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마쓰무라 진조가 왕벚나무의 학명에 원산지를 일본으로 표기한 이후, 서양에서는 왕벚나무를 ‘재패니스 플러워링 체리(Japanese flowering cherry)’로 표기하며, 중국에서도 ‘동경앵화(東京櫻花)’로 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청과 국립수목원에서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여 2015년 한반도 자생식물의 영어 이름 목록집을 발간하였는데, 그 목록집에는 왕벚나무를 ‘코리안 플러워링 체리(Korean flowering cherry)’로 표기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한라산과 전라남도의 대둔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되었다.

[에밀 조제프 타케 신부]

왕벚나무가 우리나라 원산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사람은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의 프랑스 신부였던 에밀 조제프 타케(Emile Joseph Taquet)[1873~1952]였다. 타케 신부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성모당성유스티노신학교의 3대 교장을 역임하던 당시 1930년대에 제주도에서 가져와서 심었다는 왕벚나무가 현재까지도 성모당 옆에 살아 있다. 따라서 성모당은 왕벚나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곳이다.

타케 신부는 1898년 1월 5일 스물네 살 때 조선에 도착하여 제주도에 파견되었다. 타케 신부는 제주도에서 1906년부터 1915년까지 사목 활동을 하면서, 초창기 일본 식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식물채집가 위르방 장 포리(Urbain Jean Faurie) 신부와 함께 1만 점에 이르는 식물을 채집하였다. 선교와 식물채집을 병행하던 타케 신부는 1908년 제주도 한라산 북측 아라동 관음사 뒷산 해발 600미터 자락에 살던 왕벚나무를 채집하여 집으로 가지고 갔는데, 한동안 사목 활동에 여념이 없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1912년에 되어서야 채집한 것을 장미과 식물의 권위자였던 독일 베를린대학교 쾨네(Köhne) 박사에게 보내어 감정을 받았다. 감정 결과,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임이 세계 최초로 밝혀졌다. 타케 신부는 가는 곳마다 식물의 표본을 채집하여 학명을 짓고 유럽 학계에 알림으로써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타케 신부가 가장 먼저 발견하여 학명에 ‘타케’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도 125종이나 된다.

[성모당 안익사 앞 왕벚나무]

타케 신부가 거쳐간 사목지 중에서도 경상남도 창원시의 창원 성요셉 성당[문화재자료], 전라남도 나주시의 노안성당과 나주성당, 생의 후반을 보냈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안에는 해마다 4월이면 아름다운 왕벚꽃을 활짝 피우는 오래된 왕벚나무들이 있다. 이 나무들은 타케 신부가 심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대구대교구청 안에 있는 왕벚나무 두 그루의 수령을 나이테 검사와 유전자 검사로 조사한 결과, 타케 신부가 제주도를 떠나 1922년부터 1952년 선종할 때까지 대구에서 사목 활동을 하면서 거처한 안익사 한옥 건물 앞에 살아 있는 왕벚나무의 수령이 타케 신부가 성유스티노신학교의 3대 교장을 역임하던 당시와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익사 앞 왕벚나무가 우리나라 자생의 왕벚나무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귀한 존재인 것이다. 2020년 현재 성모당 안익사 앞의 왕벚나무는 나무높이 11m에 둘레 2m 정도 크기이며, 줄기가 안익사 방향으로 기울었고, 줄기 한쪽은 썩은 상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