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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40
영어공식명칭 Archibald G. Fletcher
이칭/별칭 별리추(鱉離湫)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2년 8월 16일연표보기 -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5년 -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 수시립의과대학(Sioux City medical college)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08년 3월 2일 -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 해외 선교사로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9년 -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 선교사로 한국 파견
몰년 시기/일시 1970년연표보기 -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 사망
출생지 온타리오 - 캐나다 온타리오
학교|수학지 수시립의과대학 - 미국 아이오와시
활동지 수시립사마리탄 병원 - 미국 아이오와 시
성격 의료 선교사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캐나다 출신의 의료선교사.

[개설]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Archibald Grey Fletcher)[1882~1970]는 1882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출생하여 의대를 졸업하고 1909년 선교사로 파견되어 경상북도 안동에서 의료 선교를 하였다. 1910년 대구로 와서 1911년부터 1941년까지 30년 동안 동산기독병원장[현 동산병원]으로 있으면서 외래진료소 증축, 간호부 양성소 설립, 종합병원 체제 도입, 임상검사실·방사선검사실·영유아보건소 설치, 인턴제도 도입 등 다양한 성과를 남겼으며, 동산병원이 근대 영남권 의료 센터로서 자리 잡는 데에 기반을 다졌다. 한국 이름은 별리추(鱉離湫)이다.

1942년 6월 일제에 의하여 한국에서 강제로 추방당하였다. 해방되자 1946년 10월 7일에 다시 대구로 돌아와서 한센병 치료·요양기관인 대구애락원을 돕다가 1952년 12월 10일에 선교사직에서 은퇴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활동 사항]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는 1916년에 달성군 달서면 내당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 부지를 확보하고 대구 나병원[현 대구애락원]을 신축·이전하여 한센병 퇴치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모금을 통하여 한센병 환자 구제 사업을 확장하고 대구 외곽의 군위·의성 지역의 한센병 환자를 위한 순회 진료소도 운영하였다. 1922년에는 동산기독병원 직원들로 전도회를 구성하여 전국 농촌지역에 1940년까지 112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늘어나는 환자 수요를 감당하고자 1914년, 1927~1928년, 1931년 세 차례에 걸쳐 모금하여 동산기독병원의 규모를 확장하고 의료 인력을 유치하였다. 1926년 베이징 중국의료연합회의에서 돌아온 이후 신생아 복지사업, 여아 보건소 운영, 보건 교육을 계획하고 선교사뿐 아니라 조선인들에게도 보건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1927년 동산기독병원의 외래진료소 건물이 준공되자 종래의 단과병원 체제에서 종합병원 체제로 전환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안동 지역에도 성소병원을 개원하였다.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는 1970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신명고등학교에서는 2001년 10월에 설립자인 마사 스콧 브루언을 기념하여 ‘M. S. 브루언 동산’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마사 스콧 브루언의 쌍둥이 두 딸이 어머니 옆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겨, 2007년 10월 21일 유족들이 신명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유품을 가지고 왔다. 묘비는 가족들과 신명학교 관계자들이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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