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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병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16
한자 秋秉桓
영어공식명칭 Choo Byunghw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25년 10월 25일 - 추병환 군위청년회 집행위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0월 16일 - 추병환 조선소년연합회 중앙집행위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8년 1월 14일 - 추병환 서울청년회 상무위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4월 6일 - 추병환 조선청년총동맹 상무위원 선임
활동지 군위 - 대구광역시 군위군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성격 사회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영남친목회 반대 성명서 서명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활동 사항]

추병환(秋秉桓)[?~?]은 1925년 10월 25일 경상북도 군위청년회의 혁신 총회에 참석하고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 9월 10일 영남친목회(嶺南親睦會)를 반대하는 영남친목회 반대자 명의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영남친목회는 1927년 9월 4일 서울에서 영남 지방 유림 인사들이 친목을 명분으로 “사회를 원칙적 정의적으로 상의상조공존(相依相助共存)의 집단생활이라고 하고, 이 사회엔 마땅히 평화와 행복만이 있다 하고, 반평화 반행복적 불상사가 있으면 그것을 제거할 것”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결성한 단체였다. 이에 추병환은 대구의 정칠성(丁七星)·이춘수(李春壽) 등 대구·경북의 사회운동 진영과 함께 ‘영남친목회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어서 대구·경북 지역과 중앙의 사회운동 진영은 영남친목회를 지역감정을 고취하는 단체로 규정하고 ‘박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성토하였다. 이는 신간회(新幹會)로 민족 역량이 집중되는 데에 영남친목회가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추병환은 1927년 10월 16일 서울 경운동 천도교기념관에서 ‘소년운동은 소년의 손으로’라는 구호 아래 소년운동의 전국적 통일을 기할 목적으로 열린 ‘조선소년연합회 창립대회’에 참가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1월 3일 군위에서 열린 ‘신간회군위지회 설립대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고, 1월 14일 서울청년회의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4월 6일에는 조선청년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회 간담회에서 조직부 상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추병환은 193년 6월 동아일보 군위지국장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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