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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집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570
한자 大峯集序
영어공식명칭 Daebongjip Prefac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12년 - 「대봉집서」 저자 안정복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786년연표보기 - 「대봉집서」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91년 - 「대봉집서」 저자 안정복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00년 - 『순암집』에 「대봉집서」 수록하여 간행
배경 지역 「대봉집서」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지도보기
성격 서발류|서문
작가 안정복

[정의]

1786년 학자 안정복이 대구의 오천서원에 제향된 양희지의 『대봉집』에 부쳐 집필한 서문.

[개설]

「대봉집서(大峯集序)」의 저자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백순(百順)이며, 호는 순암(順庵)이다. 아버지는 안극(安極)[1696~1754]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익령(李益齡)의 딸이다. 이익(李瀷)[1681~1763]의 문인이다.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 특출났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분류되며 가학(家學)의 영향으로 보수색이 짙다. 이병휴(李秉休)[1710~1776], 이상정(李象靖)[1711~1781] 등과 교유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을 포함한 수많은 저서가 전하여 온다.

『대봉집(大峯集)』은 양희지(楊熙止)[1439~1504]의 저서이다. 양희지의 본관은 중화(中和)이고, 자는 가행(可行)·정보(楨父)이며, 호는 대봉(大峰)이다. 아버지는 양맹순(楊孟淳)이고,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 정시교(鄭是僑)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 김굉필(金宏弼)[1454~1504] 등 조선 전기 명신들과 교유하였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오천서원(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구성]

「대봉집서」는 문장의 가치, 서문을 쓰게 된 계기, 양희지의 공적 등을 서술하고 있다.

[내용]

「대봉집서」의 서두에서 안정복은 고인의 언행과 인격을 논하기 위하여서는 남겨 놓은 사적을 참고하여야 하면서 문장의 가치를 논하고, 양희지의 외손인 이천섭(李天燮)의 부탁으로 서문을 짓게 되었다고 밝힌다.

본문에서는 양희지의 성품과 공적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열거하였다. 성종(成宗)[1457~1494] 대에 임사홍(任士洪)[1445~1506]의 참수를 청하는 소(疏)와 김언신(金彦辛)의 구명, 척불(斥佛)하는 차자 등을 올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을 자신의 소신으로 삼은 양희지의 일화를 제시하였다. 또 연산군(燕山君)[1476~1506] 대에 대사간(大司諫)으로서 상소로 6조목을 아뢴 일, 무오사화(戊午士禍)[1498]로 인하여 서북도에 안치된 자들의 귀양지를 옮겨 줄 것을 청한 일 등을 열거하여 양희지의 정충대절(貞忠大節)을 높였다.

「대봉집서」 결문에서는 교유한 벗들을 차례로 열거하여 양희지의 어짊을 드러내고, 양희지에 대한 제가(諸賢)의 비평으로 글을 마무리하였다.

[특징]

「대봉집서」 말미에는 성종, 정여창(鄭汝昌)[1450~1504], 남효온(南孝溫)[1454~1492], 남곤(南袞)[1471~1527], 표연말(表沿沫)[1449~1498]의 양희지에 대한 비평이 있다.

[의의와 평가]

「대봉집서」양희지가 죽고 300여 년 뒤에 지어진 것인데, 안정복이 정제된 문장으로 『대봉집』을 소개하고 있다. 양희지의 문학적 면모를 300여 년 뒤에 재조명하며 『대봉집』의 가치를 드높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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