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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골의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091
한자 高山- 由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고산골의 유래」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 「고산골의 유래」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관련 지명 고산골 -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신라 왕|백발노인
모티프 유형 지명유래담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있는 고산골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고산골의 유래」는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고산골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시대 때, 왕실에서는 대를 이을 왕자가 없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왕자를 임신하기 위하여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도 보고 온갖 약을 써 보았지만 왕비의 몸에는 태기가 없었다. 왕이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고산골에 절을 세우고 불공을 드리면 왕자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고산골에 ‘고산사(高山寺)’라는 이름의 절을 세우고 불공을 드렸더니 진짜로 왕자를 얻었다. 이에 왕이 기뻐하여 절에 석탑을 세웠다.

고산사는 임진왜란(壬辰倭亂)[1592] 때 훼손되었는데, 일본군이 석탑 안의 보물을 훔치려다가 벼락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한다. ‘고산골’ 이름은 고산사에서 유래하였고, 고산골 인근을 ‘탑동네’라고 한 것은 고산사에 세워진 석탑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어느 무당이 고산사가 있던 자리에 새로 절을 지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 폐쇄하였다고 한다. 고산사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조계종단에서 새로 지은 법장사(法藏寺)라는 절이 있다.

[모티프 분석]

「고산골의 유래」는 지명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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