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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81
한자 魯院齋
영어공식명칭 Nowonja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3길 16-9[노곡동 산78-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70년연표보기 - 노원재 건립
현 소재지 노원재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3길 16-9[노곡동 산78-1]지도보기
원소재지 노원재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3길 16-9[노곡동 산78-1]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집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함안조씨 원대 문중
관리자 함안조씨 원대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시원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개설]

노원재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1627~1689]을 추모하기 위하여 함안조씨(咸安趙氏)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재실의 솟을대문에는 ‘척창문(惕愴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척창’은 선조를 떠올리니 삼가고 두렵고 슬프다는 뜻이다. 노원재 뒤편에 조시원의 묘소가 있다.

조시원함안조씨 대구 원대[현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입향조인 연담(蓮潭) 조함장(趙咸章)[1597~1648]의 맏아들이다. 기호 남인의 영수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3년(현종 4)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정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의금부도사·고성군수·정랑을 지냈으며 1676년에는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충청감영에 나아가 구휼미를 풀어 여러 고을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1681년 순천부사로 나아갔다가 당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위치]

노원재북구 노곡동 산78-1에 있다.

[변천]

노원재함안조씨 문중이 1970년에 건립하였다. 기문은 후손 조용술이 짓고 글씨는 최인식이 썼다.

[형태]

노원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이다. 건물 전면과 측면 일부에 계자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 각 1칸은 방인데 4칸 모두 유리 전면에 창호를 달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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