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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04
한자 趙龍善
영어공식명칭 Cho Yongs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 2월 11일연표보기 - 조용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조용선 수원에서 3·1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조용선 조선민족대동단 입단
활동 시기/일시 1921년 3월 18일 - 조용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 확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7년 - 조용선 대통령표창 수훈
몰년 시기/일시 1981년 5월 31일연표보기 - 조용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조용선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칠성동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조선민족대동단 단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조용선(趙龍善)[1894~1981]은 1894년 2월 1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수원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고, 조선민족대동단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조용선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경기도 수원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일명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을 결성하자 조용선도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김가진(金嘉鎭)이 조선민족대동단 총재, 전협이 재정, 최익환이 선전 및 대외 활동을 맡았다. 조선민족대동단은 경기도·경상도·충청도·평안도·전라도·중국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지부를 설치하고 단원 모집 및 군자금 확보에 힘썼다. 이때 조용선은 서울·공주 등지에서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9년 4월부터 『대동신보(大東新報)』를 비롯한 각종 문건을 제작·배포하였다.

1919년 11월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망명사건이 발각되면서 조선민족대동단원들이 본격적으로 체포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체포된 단원들은 「정치범 처벌령」 위반,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사기’ 등의 명목으로 기소되었다. 조용선은 1921년 3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용선은 1981년 5월 3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용선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자료』 3(국사편찬위원회, 1973)
  •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21. 3. 18.)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http://815gb.or.kr)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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