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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926
한자 李忠九
영어공식명칭 Lee Chungg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재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3월 5일 - 이충구 경상북도관찰사[칙임관 3등] 임명
부임|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유배|이배지 신지도(薪智島) -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
성격 관료
성별 남성
대표 관직 경무사|중추원찬의|경상북도관찰사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개설]

이충구(李忠九)[?~?]는 대한제국기 경무사, 중추원찬의, 경상북도관찰사를 역임한 관료이다. 1907년 3월 5일 경상북도관찰사[칙임관 3등]에 임명되어 대구에 부임하였다.

[활동 사항]

이충구는 1897년 독립협회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정부에서 법부 형사국장과 민사국장을 지냈고, 이후 경무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에 관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 유배형을 받고 신지도(薪智島)에 유배되었다. 1906년에 석방되어 중추원찬의에 임명되었다.

이충구는 1907년 3월 5일 경상북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며 1907년 10월 경상북도관찰사로서 법부에 보고하였다. 민형사 재판을 위하여 대구에 공소원을 설치할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었다. 1908년 7월 10일 전 경상북도관찰사로서 가의대부에 올랐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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