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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76
한자 楊在河
영어공식명칭 Yang Jaeha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최재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 6월 20일연표보기 - 양재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3년 7월 - 양재하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 임학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3년 8월 - 양재하 이왕직 산림사무 촉탁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3년 8월 - 양재하 중국 펑톈 주재 일본총영사관 부영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양재하 미국 호놀룰루 주재 일본총영사관 부영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9년 3월 - 양재하 양산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4월 - 양재하 조선총독부 사무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6년5월 - 양재하 충청북도 참여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양재하 선만척식주식회사와 만선척식주식회사 감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양재하 조선인광주식회사 감사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46년 11월 21일연표보기 - 양재하 사망
출생지 지산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일본거류민소학교 - 부산광역시
학교|수학지 도쿄제국대학 - 일본 도쿄시
활동지 중국 펑톈 주재 일본총영사관 - 중국 선양시
활동지 호놀룰루 주재 일본총영사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성격 친일반민족행위자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조선총독부 충청북도 참여관|선만척식주식회사 감사|만선척식주식회사 감사|조선인광주식회사 감사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양재하(楊在河)[1883~1946]는 1883년 6월 2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조선총독부 관료로 활동하며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에 앞장섰다.

[활동 사항]

양재하는 1913년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한 뒤 1913년 8월 일제강점기에 조선 왕실의 일을 맡아보던 이왕직(李王職)의 산림사무 촉탁에 임명되었다. 1921년 조선총독부로부터 펑톈[奉天] 주재 일본총영사관 부영사에 임명되었다. 1925년 호놀룰루 주재 일본총영사관 부영사로 전보되었고, 당시 하와이 거주 한인들이 거부운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양재하는 1929년 3월 경상남도 양산군수에 임명되었다가, 1930년 4월 조선총독부내무국 겸 관방(官房) 외사과 사무관이 되었다. 1936년 5월 충청북도 참여관으로 승진하여 2년간 재임하였다. 1938년 9월부터 1940년 9월까지 선만척식주식회사와 만선척식주식회사의 감사로 활동하며 일제의 식민지 경제정책에 적극 협력하였다. 1941년부터는 조선인광주식회사(朝鮮燐鑛株式會社)의 감사를 지냈다.

양재하는 일제로부터 1934년 훈6등 서보장과 1938년 훈5등 서보장을 받았고, 만주국 정부로부터도 1937년 건국공로장과 1941년 훈6위 경운장(景雲章) 등을 받았다. 양재하는 1946년 11월 21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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