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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083
한자 晦淵齋
영어공식명칭 Hoeyeonjae
이칭/별칭 회연정사(晦淵精舍),도곡산방(道谷山房)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도곡길 75-33[서변동 60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71년연표보기 - 회연재 건립
현 소재지 회연재 - 대구광역시 북구 도곡길 75-33[서변동 608]지도보기
원소재지 회연재 - 대구광역시 북구 도곡길 75-33[서변동 608]
성격 재실
양식 목재 와가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2.5칸
소유자 인천이씨 회연 종중
관리자 인천이씨 회연 종중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순희를 추모하는 재실.

[개설]

회연재(晦淵齋)회연(晦淵) 이순희(李淳熙)[1908~1972]가 만년에 서재로 건립하였다. ‘회연정사(晦淵精舍)’ 또는 ‘도곡산방(道谷山房)’이라고도 한다. 이순희는 1930년에 일본 도시샤고등상업학교[同志社高等商業學校]에 유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46년에 조선방직주식회사 대구메리야스공장 공장장이 되었으며, 1947년에 상무취체역이 되었다. 1953년에 내외방직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였고, 1957년 7월에 영남일보(嶺南日報) 제3대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이순희는 사시(社是)를 ‘신속 정확·직필 정론·산업 건설·통일 촉성’으로 정하고 경영하여 회사를 확장시켰다. 1958년에는 자유당 공천으로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영남일보 경영에 참여하였다. 만년에는 인천이씨 문중 일에도 참여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가 건립한 환성정(喚惺亭)을 중수할 때 큰 역할을 하였다. 환성정은 처음에는 금호강 변에 있었는데 1800년대 후반에 지금의 서계서원(西溪書院) 내에 옮겨 복원하였다.

[위치]

회연재북구 서변동 608에 있다.

[변천]

회연재는 1972년 이순희가 사망한 뒤 후손들이 추모 재실로 만든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형태]

회연재는 정면 5칸, 측면 2.5칸의 목재 와가이다.

[의의와 평가]

회연재는 기업인·언론인·정치인인 이순희가 생전에 사용하던 서재를 후손들이 재실로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하여 현대에도 새로운 재실이 건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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