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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국회의원 선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87
한자 第四代 國會議員 選擧
이칭/별칭 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8년 5월 2일연표보기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종결 시기/일시 1958년 5월 2일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종결
성격 선거
관련 인물/단체 자유당|민주당

[정의]

1958년 5월 2일에 대구 지역에서 민의원을 선출한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역사적 배경]

1952년 개헌에 의하여 우리나라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으로 구성하여야 했다. 그러나 참의원은 구성되지 못하여 왔다. 1958년 1월에 국회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선거법」을 폐지하고 민의원의원 선거와 참의원의원 선거를 분리한 「민의원의원선거법」과 「참의원의원선거법」을 제정하였다. 참의원의원 선거는 법 제정 이후 1년 이내에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실시되지 않았다. 민의원 의석은 203석에서 233석으로 늘어났다. 1958년 2월 25일 진보당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등록이 취소되었다. 이에 따라 민의원의원 선거는 자유당 대 민주당의 각축전으로 변하였다. 한편, 개정된 「국회의원선거법」에 따라 대구시의 선거구는 6개 구로 늘어났다.

[경과]

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는 1958년 3월 1일부터 10일까지 입후보자 등록을 실시하였다. 6개 구에 등록한 입후보자 수는 총 26명이었지만, 중도 사퇴 2명으로 인하여 최초 21명이 되었다. 대구갑구에서는 무소속 2명·민주당 1명, 대구을구에서는 민주당 1명·민주혁신당 1명·자유당 1명·독립노농당 1명, 대구병구에서는 무소속 3명·민주당 1명·민주혁신당 1명, 대구정구에서는 민주당 1명·자유당 1명·무소속 1명, 대구무구에서는 민주당 1명·자유당 1명·민주혁신당 1명, 대구기구에서는 자유당 1명·민주당 1명·무소속 1명이 출마하였다. 1958년 5월 2일에 선거가 실시되었다. 개표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우선 대구갑구에서는 무효투표수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 ‘피아노식 개표’라는 말이 나돌았다. 병구와 기구에서도 개표 부정이 드러나 개표가 일시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결과]

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대구갑구에서 신도환[무소속], 대구을구에서 이병하[민주당], 대구병에서 이우출[무소속], 대구정구에서 조재천[민주당], 대구무구에서 조일환[민주당], 대구기구에서 이순희[자유당]가 당선하였다. 대구 지역 민의원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3석, 무소속 2명, 자유당 1석이 당선하였다. 당시 전국적으로 자유당이 54.1%에 해당하는 126명[공천자 121명, 비공천자 5명]이 당선한 것과 비교하여 볼 때 대구 지역은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한 의원이 매우 적은 편이었다.

[의의와 평가]

제4대 국회의원 선거[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는 1958년 5월 2일에 헌정 사상 처음으로 「민의원의원선거법」에 따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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