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신간회 대구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10
한자 新幹會 大邱支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9월 3일연표보기 - 신간회 대구지회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31년 - 신간회 대구지회 해소 추정
최초 설립지 신간회 대구지회 최초 설립지 - 대구부 신정 지도보기
성격 민족운동 단체
설립자 권동진(權東鎭)·백관수(白寬洙)·신석우(申錫雨)·신채호(申采浩)·안재홍(安在鴻)·유억겸(兪億兼)·이상재(李商在) 외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지회.

[설립 목적]

신간회는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예속의 탈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의 쟁취, 청소년·여성의 형평운동 지원, 파벌주의·족보주의의 배격, 동양척식회사 반대, 근검절약 운동 전개 등을 활동 목표로 내걸고 전국에 지회(支會)와 분회(分會)를 조직하였다.

[변천]

1927년 2월 23일에 권동진(權東鎭)·백관수(白寬洙)·신석우(申錫雨)·신채호(申采浩)·안재홍(安在鴻)·유억겸(兪億兼)·이상재(李商在) 등 34명이 발기하여 신간회를 조직하였다. 신간회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민족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여 전국 단위로 지회와 분회를 조직하였다. 신간회 지회 설립은 1927년 5월 중순부터 본격화하였다. 대구에서는 1927년 6월 말부터 이경희·송두환·최윤동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이 신간회 대구지회설립준비위원회를 설립하고자 여러 차례 회합을 가졌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1927년 7월에 대구 사회주의 세력은 대구청년동맹을 결성하고 신간회 대구지회 설립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1927년 7월 23일 제1회 신간회 대구지회설립준비위원회 결성을 위하여 지회설립위원장과 지회 설립의 실무를 담당할 설립준비위원들을 선출하였다. 지회설립위원장 이경희, 설립준비위원 송두환·최윤동·김태련·홍주일·서만달·장하명·곽진영·장인환·박진형·송기찬·이상화 등은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로,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나 대구 지역의 종교계·언론계 등에서 활동하였던 인물이었다. 장적우와 김이용은 사회주의 계열의 인물이었다. 신간회 대구지회는 1927년 9월 3일 오후 2시 조양회관에 약 600명이 참석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신간회 대구지회 회원은 약 150명이었지만 일 년 지난 뒤인 1928년에는 약 300명으로 증가하였다. 1931년에 신간회 본부가 해소됨에 따라 신간회 대구지회 역시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간회 대구지회신간회 대구지회 화원분회와 같은 분회(分會)와 하부 조직인 반회(班會)를 직업별 혹은 지역별로 조직하여 지회 조직을 강화하였다. 또 일반인과 회원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개최하고, 달성군 옥포면 지역에 6개 노동야학을 세워 계몽 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중의 정치의식과 교양을 함양하였다. 신간회 대구지회 간사 장적우대구고등보통학교·대구농림학교·대구상업학교 등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상 강좌를 개최하여 학생운동에 대한 지원 활동을 강화하고, 그들이 정치투쟁 운동을 전개하는 데 지원 활동을 하였다. 또 신간회 대구지회는 재만 동포 폭압 문제, 영남친목회와 경제연구회 설립 문제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하여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현황]

신간회 대구지회는 회장·부회장·서무부·재무부·출판부·정치문화부·조사부·조직부·선전부로 조직되었고, 각 부서에는 총무간사와 상무간사를 두었다. 1927년 12월 28일 신간회 대구지회 제1회 정기대회에서 정식 간부진이 선출되었다. 신간회 대구지회 회장 최윤동, 부회장 곽진영, 서무부 총무간사 정두환, 서무부 상무간사 채홍익, 재무부 총무간사 서영로, 재무부 상무간사 장하명, 출판부 총무간사 이상화, 출판부 상무간사 장적우, 정치문화부 총무간사 최익준, 정치문화부 상무간사 김이용, 조직부 총무간사 장인환, 조직부 상무간사 윤철한, 조사부 총무간사 이재화, 조사부 상무간사 김인성, 선전부 총무간사 허홍제, 선전부 상무간사 조병렬, 전형위원 장적우·김이용·장인환·송두환·서만달·송기찬이었다. 이때 신간회 대구지회의 주무 부서인 정치문화부, 조직부, 선전부 등은 대구청년동맹을 중심으로 결집되었던 사회주의 계열이 담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대구지회는 1920~1930년대 대구 지역의 농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 민족운동 확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