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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하 계엄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436
한자 美軍政下 戒嚴令
영어공식명칭 Martial Law in the U.S. Military Govern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2일연표보기 - 미군정하 계엄령 포고 제1호 공포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3일 - 미군정하 계엄령 포고 제2호 공포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3일 - 미군정하 계엄령 포고 제3호 공포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4일 - 미군정하 계엄령 포고 제4호 공포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6일 - 미군정하 계엄령 포고 제5호 공포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6일 - 미군정하 계엄령 포고 제6호 공포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6일 - 미군정하 계엄령 포고 제7호 공포
공포 시기/일시 1946년 10월 21일연표보기 - 미군정하 계엄령 해제 포고 제8호 공포

[정의]

1946년 미군정이 대구 10월항쟁에 대응하고자 포고한 긴급조치.

[개설]

대구 지역에서는 해방되고 1년이 지나도록 극심한 식량난이 지속되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미군정의 식량 정책 실패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섰고, 이에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가 무장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이 사건이 바로 10월 항쟁이다. 10월 항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미군정은 해방 이후 최초의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경상북도 미군정 당국은 1946년 10월 2일 대구 지역에서 대구경찰서가 시위대에 점거당하자 경찰만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전술 부대인 미 보병 제6사단 제1연대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미군 탱크가 동원되어 대구경찰서대구역의 시위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경상북도 미군정 당국은 같은 날인 10월 2일 저녁 일곱 시를 기하여 포고 제1호를 통하여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계엄령에는 집회 및 회의 금지, 야간 통행 금지, 차량 통행 금지 등의 내용을 담겨 있었다. 이후 10월 7일까지 여섯 차례 계엄령을 포고하였다.

[관련 기록]

10월항쟁에 대한 미군정의 계엄령 관련 포고는 「1946년 10월 4일 알버트 E. 브라운 소장이 행한 대구소요 사태 조사보고서」의 별첨에 계엄 포고 제1호부터 제3호까지 실려 있다. 또한 포고 제1호부터 제8호까지 포고는 1991년에 출간한 『대구10월항쟁 연구』에 번역문이 실려 있다.

[내용]

경북 미군정 당국은 1946년 10월 2일 저녁 일곱 시를 기하여 포고령 제1호를 발포하고 계엄을 선포하였다. 경상북도 미군정 당국의 공보 장교는 포고 제1호의 목적이 치안유지에 있으며, 계엄령이 실시되면 군 책임자는 누구든지 체포할 권한을 가지며, 언론출판의 자유까지 구속할 수 있으며, 범인은 평소보다 더 죄가 중하다는 등의 내용을 밝혔다. 포고령 제1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에 계엄령을 실시한다. 경찰이 법과 질서를 유지할 것이며, 최후 수단으로는 군대가 사용될 것이다. 시민은 절대로 경찰에 복종하여야 한다./ 10명 이상의 집회와 회의를 금지한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야간통행을 금지한다./ 승객을 운반하는 차량과 식량 배급에 사용되지 않는 차량의 대구 시내 통행을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는 차량은 몰수한다./ 이상 포고에 협력을 요구하며, 법과 질서는 재확립될 것이다./ 포츠 대령의 명에 의거: 지역사령관 앨머 쿡 중령 감찰부 참모”

경상북도 미군정 당국은 1946년 10월 3일 무기 반환과 경찰 가족 석방 등을 요구한 포고 제2호와 이동 금지를 요구하는 내용의 포고 제3호를 연이어 발포하였다. 10월 4일에는 무기 반환을 명령하는 포고령 제4호를 발포하였다. 1946년 10월 6일에는 “대구부내 및 달성군내에 거주하는 철도 종업원에 대하여서 즉시 직장에 복귀를 명”하는 포고 제5호를 발포하였다. 같은 날인 10월 6일 경상북도의 대구, 달성군, 경주군, 영일군을 대상으로 “국내 혹은 국외의 적군을 대항하여 본 도내의 양민과 애국자를 보호하기로 목적한다”라며 포고 제6호를 발포하였다. 한편, 10월 6일에는 포고 제7호에 해당하는 포고도 발포하여 대구를 포함한 경상북도 전역에 오후 일곱 시부터 이튿날 오전 여섯 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를 시행하였다. 포고 제7호에 해당하는 포고는 앞선 포고들이 계엄사령관 단독 명의로 발표된 것과 달리, 계엄령이 시행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조치가 포함되어 군정 지사와 공동으로 발포하여야 하기 때문에 포고의 호수가 명기되지 않았다.

경상북도 미군정 당국은 1946년 10월 21일 경상북도 군정지사 아데어 대좌가 대구·달성·경주·영일 등 네 곳에 시행된 계엄령을 해제한다는 내용의 포고령 제8호를 발포하였다.

[의의와 평가]

미군정하 계엄령은 1946년에 발생한 대구 10월항쟁에 대응하고자 경상북도 미군정 당국이 시행한 긴급조치로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10월항쟁 진압뿐 아니라 미군정 중심의 지배 질서를 구축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이로써 광복 후 국가 건설 과정에서 식량·기아 문제뿐 아니라 경찰 개혁 및 미소공동위원회 속개 등과 같은 시급한 현실 과제를 해결하고자 발생한 10월항쟁은 좌절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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