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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공업총액임금제분쇄투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92
한자 大同工業總額賃金制粉碎鬪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92년 6월 3일연표보기 - 대동공업총액임금제분쇄투쟁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92년 7월 20일연표보기 - 대동공업총액임금제분쇄투쟁 종결
발생|시작 장소 대동공업주식회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북리 대동공업 사업장지도보기
종결 장소 대동공업주식회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북리 대동공업 사업장지도보기
성격 노동 운동
관련 인물/단체 송경달|박종석

[정의]

1992년 6월 3일부터 9월 2일까지 대구광역시에 있는 대동공업에서 진행된 노동 운동.

[역사적 배경]

1992년 노태우 정부는 일정 규모가 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고임금노동자’의 임금을 5% 이내로 억제하는 총액임금제 도입을 발표하였다. 총액임금제는 노태우 정권이 노동자 1년 총액임금을 기준 삼아 일정 비율 이하로 임금 인상률을 정하도록 강제한 제도였다.

[경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북리 달성공단에 있는 대동공업주식회사[대표자 한재형]는 국내 최대 농기계 제조업체이다. 1992년 들어서면서 노태우 정권은 임금 인상 억제를 위한 총액임금제 등을 추진하였다. 정부는 종업원 500인 이상 대기업 868개 등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1,434개를 대상 업체로 선정하여 임금 총액 기준 5% 인상을 강력히 관철시키기로 하였다. 대동공업주식회사의 1992년 임금 교섭 역시 아예 사장은 교섭 석상에 나타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총액 5% 인상만을 되풀이 주장하였다. 이에 맞서 노조는 6월 2일 전 조합원 90%의 동의로 파업을 결의하고, 6월 3일 부분파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회사 측은 입장 변화가 없이 6월 12일 직장 폐쇄를 실시하였다. 이에 노조에서는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고 19일부터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6월 28일 1,5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되어 109명을 연행하였다. 7명의 노조원이 구속되자 노조원 200명이 달성경찰서에서 농성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7월 20일 노사 합의를 통하여 기본급 7.2% 인상과 고소 취하에 합의하였다.

[결과]

대동공업 노조는 1992년 9월 2일 49일간의 파업을 정리하며 회사 측과 협상을 타결하였다. 이후 노조원의 단결된 연대로 회사 측에 강력히 요구한 결과, 구속 이후 해고되었던 조합원들도 3년 만에 모두 복직되었디.

[의의와 평가]

대동공업총액임금제 분쇄투쟁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총액임금제의 반노동자적 성격을 폭로하고 민주 노조 건설과 연대 운동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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