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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자경찰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23
한자 大邱女子警察署
이칭/별칭 국립경찰학교,경북경찰국,여자경찰서,여경찰관,정복향,노마리아,최춘향,김희숙,유관순 열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7년 9월 6일연표보기 - 대구여자경찰서 창설
해체 시기/일시 1957년 8월 1일연표보기 - 대구여자경찰서 폐지
성격 경찰기관
설립자 치안국

[정의]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여성 및 아동 보호를 위한 치안 행정 기관.

[개설]

1946년 5월 15일 대한민국 최초로 여경찰관을 모집하였다. 간부 15명과 여경찰관 1기생 64명이 국립경찰학교에서 2개월간의 훈련을 이수한 뒤, 7월 16일에 배출되어 전원 중앙에 배치되었다. 1947년 1월에는 여경찰관의 정원이 500명으로 책정되어 각 도의 일선 경찰서에 여경찰관이 배치되었고, 7월 1일을 시작으로 부산·대구·인천 등지에 여자경찰서가 신설되었다. 여자경찰서는 서장, 경사, 순경이 모두 여성으로만 구성되었다.

[설립 목적]

대구여자경찰서(大邱女子警察署)는 여성 피의자의 신체 수색이나 여성 범죄자의 감시, 불량소년이나 소녀에 대한 조치, 미아와 노인 등 구호가 필요한 사람에 대한 구호 조치에 여경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설치되었다.

[변천]

1947년 9월 6일 창설된 대구여자경찰서는 창설 10년 만인 1957년 8월 1일 서울, 인천, 부산 등지의 여자경찰서와 함께 폐지되었다. 대구여자경찰서 대신 경북경찰국 보안과에 여경계가 신설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여자경찰서의 초대 서장은 1946년 9월 6일 취임한 정복향(鄭福香)이었고, 2대 서장은 1949년 6월 20일 취임한 노마리아였다. 노마리아는 유관순 열사의 올케로 일본 경찰의 위협에도 유관순 열사의 행적을 발설하지 않고 도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대 서장은 1953년 취임한 최춘향(崔春香)이었고, 4대 서장은 1957년 2월 22일에 부임한 김희숙이었다.

대구여자경찰서의 조직은 외근계, 조사계, 유치장 관리계, 유치장 관리과, 총무계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1957년에는 63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대구여자경찰서의 업무는 ① 여경 감찰에 관한 사항, ② 불량소년 소녀의 지도 감화 및 취체, ③ 부녀자의 풍기 및 수사에 관한 사항, ④ 여성 범죄 정보수집 및 수사 보조에 관한 사항, ⑤ 부녀(婦女), 소년, 소녀의 유치장 간수에 관한 사항, ⑥ 교통사고 조사 보조에 관한 사항 등이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여자경찰서는 미군정기인 1947년 9월 설립되어 1957년 8월 폐지될 때까지 10여 년 동안 부녀자나 청소년들의 범죄에 대한 지도, 보호, 계몽활동을 수행하며 여성과 아동을 관련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등 여성과 아동의 인권 신장에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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