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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군사후원연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239
한자 大邱府軍事後援聯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시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7년 7월 28일 직후 - 대구부군사후원연맹 결성 추정
성격 친일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중일전쟁 군사 지원 단체.

[개설]

대구부군사후원연맹(大邱府軍事後援聯盟)은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결성한 조선군사후원연맹의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분회 조직이다. 대구부군사후원연맹은 참전 군인과 가족, 사망하거나 다친 군인과 가족을 돕고 위문하는 각종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각종 사업에 필요한 모금 활동 등을 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부군사후원연맹은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상이군인과 가족, 유족에 대한 부조, 참전 군인과 가족에 대한 위문, 일반 국민의 원호 사상 강화 등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변천]

1937년 7월 24일 조선총독부의 주도 아래 조선군사령부를 비롯하여 군사후원회 조선본부,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 재향군인회, 국방부인회 등의 단체들을 가맹단체로 한 조선군사후원연맹이 조직되었다다. 사무소는 조선총독부 내무국 사회과에 두었고, 정무총감이 회장을 맡았다. 도(道)에는 지부가 설치되고, 부·군·도(府·郡·島)에는 분회가 조직되었다. 지부와 분회의 명칭은 각각 ‘○○도군사후원연맹’, ‘○○부[또는 군·도]군사후원연맹’이었다.

대구부군사후원연맹이 언제 결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경상북도군사후원연맹의 결성식이 1937년 7월 28일 열린 것으로 보아 대구부군사후원연맹은 그 직후에 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1년 7월 31일 조선군사후원연맹이 재단법인 군인원호회 조선지부에 통합되었다. 대구부군사후원연맹 또한 그러한 변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군사후원연맹의 주요 사업은 첫째, 군인 원호 사상의 보급, 둘째, 상이군인과 군인 가족 및 유족에 대한 부조(扶助), 셋째, 출전 군인과 가족에 대한 직업 알선, 넷째, 출전 또는 귀환 군인에 대한 송영과 접대, 다섯째, 출전 군인과 가족에 대한 위문 격려, 여섯째, 전병사상(戰病死傷) 군인과 가족 유족에 대한 조문과 위문, 일곱째, 기타 필요한 사업을 위한 모금 등이었다.

대구부군사후원연맹의 활동 또한 조선군사후원연맹의 활동 범주 안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신문 자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대구부군사후원연맹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1938년 10월 경상북도군사후원연맹과 함께 ‘총후후원강화주간(銃後後援强化週間)’ 행사의 일환으로 군인들을 초대하여 영화 위안회(慰安會)를 진행하였다. 1938년 여름부터 출전 군인의 유가족을 위한 ‘군인홈’을 만들 계획을 세운 뒤, 우선 동본원사(東本願寺)의 한쪽을 군인홈으로 사용하였다. 1939년 말에는 자금 1만 원을 모아 군인홈 건설을 시작하였다. 1940년 2월 10일 대구신사(大邱神社)에서 대구 출신 출전 군인의 ‘귀환봉고제(歸還奉告祭)’를 거행하였다. 1940년 2월 대구부는 적당한 부지를 찾아 군인 유가족을 위한 ‘수산탁아소(授産託兒所)’를 1941년에 설치하여 대구부군사후원연맹에 지도와 경영을 맡길 계획을 세웠다. 1940년 7월부터 10월 초까지 대구부민에게서 위문품 3,653개, 현금 1,356원을 모집하였다.

[의의와 평가]

중일전쟁 발발과 동시에 결성된 대구부군사후원연맹은 후방의 전쟁 후원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일제의 군사 협력 조직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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