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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도시계획 개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47
한자 大邱府都市計劃 槪要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922년 8월연표보기 - 「대구부도시계획 개요」 작성
성격 문헌|문서|도시계획서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부가 발주하여 작성한 도시계획 용역 결과 보고서.

[개설]

「대구부도시계획 개요(大邱府都市計劃 槪要)」는 1922년 8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토목부원 우에다 마사요시[上田政義], 오쿠이 료타로[奧井亮太郞] 등이 대구부의 용역을 받고 제출한 도시계획 보고서이다.

[제작 발급 경위]

「대구부도시계획 개요」대구부가 1910년대 대구부시구개정사업(市區改正事業) 이후 새로운 도시계획을 추진할 목적에서 작성한 도시계획서이다. 1919년 일본에서 시구개정사업을 대신한 도시계획에 관한 법률이 정비되고, 1921년 서울에서 경성도시계획위원회(京城都市計劃委員會)가 구성된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

[형태]

「대구부도시계획 개요」대구부가 발주한 도시계획 용역 보고서이다.

[구성/내용]

「대구부도시계획 개요」의 주요 내용은 목표 연도를 1946년으로 설정하여 대구부 행정구역 내외에 교통·위생·보안·경제 등의 분야에서 공공의 안녕과 복리를 증진할 주요 시설 계획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대구부도시계획 개요」의 구성은 구역의 결정, 지역의 결정, 철도·도로·위생·보안, 공공시설, 사회 시설, 경제 및 재원 등으로 되어 있다.

「대구부도시계획 개요」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대구역사의 이전과 전차 궤도의 설치였다. 먼저 대구역사는 현재 지점으로부터 약 5정[545m]을 후퇴시켜 석유 창고 부근으로 이동시킬 계획이었다. 역사 이전과 함께 시내 중심부에는 연장 8마일[12.8㎞]에 걸친 복선의 시내 전차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대구부도시계획 개요」를 위하여 대구부는 향후 25개년간의 대구부 세입의 자연증수 660만 원, 국고 보조, 국유지의 무상 하부(下付), 부유(府有) 재산 매각, 부채와 기타 부영에 의한 특종 사업 수익 등으로 예산을 충당할 계획이었다.

「대구부도시계획 개요」에 따라 대구부는 도시계획위원회를 구성하고, 1923년 1월 30일에 제1회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대구부도시계획조사규정’을 채택하였다. 도시계획위원회는 조선인 11명과 일본인 26명 등 모두 37명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대구부도시계획 개요」대구부의 조선인사회(朝鮮人社会)와 일본인사회(日本人社会) 모두의 반발에 부딪혀 도시계획 전체 사항이 수정되거나 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부도시계획 개요」는 1910년대 시구개정사업 이후 본격적인 도시계획이 추진되는 가운데 대구부가 추진한 도시계획이었으나 대구 사회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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