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503
한자 永慕齋[中和楊氏]
영어공식명칭 Yeongmojae[Junghwa Yang clan]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수로 167[황금동 11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3년연표보기 - 영모재[중화양씨]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7년 - 영모재[중화양씨] 중수
현 소재지 영모재[중화양씨]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수로 167[황금동 산119]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목조와가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중화양씨 지촌공파 문중
관리자 중화양씨 지촌공파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양달화를 추모하는 재실.

[개설]

영모재(永慕齋)[중화양씨]는 조선 영조(英祖) 때의 학자인 양달화(楊達和)[1694~1756]를 추모하기 위하여 1913년에 건립되었다. ‘영모재’는 길이 흠모하는 집이라는 의미이며, 영모재에서 북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양달화의 묘소가 있다.

영모재에는 많은 편액과 시문이 걸려 있는데, ‘영모재’라는 편액 글씨는 서예가인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가 썼다. 영모재 편액 왼쪽에 ‘먼 조상을 추모하는 집’이란 뜻의 ‘추원재(追遠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대청에는 양달화의 6세손 양재호(楊在湖)가 쓴 ‘돈목당(敦睦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돈목당은 후손들이 조상의 제사를 받들면서 돈독하고 화목하게 지낸다는 의미이다.

양달화의 자는 태삼(泰三)이고, 호는 지촌(池村)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 향리에서 명성이 높았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무학산 아래에 학산서당을 열고 후학을 양성하여 향리 교화에 이바지하였다.

[위치]

영모재[중화양씨]는 수성구 황금동 산119에 있다.

[변천]

1913년에 건립되었고, 중화양씨 지촌공파 문중에서 2017년 중수하였다.

[형태]

영모재[중화양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2칸은 방이며 1칸은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