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016
한자 李公堤碑
영어공식명칭 Igongjebi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천동로 117[상동 182-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78년 8월연표보기 - 이공제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797년 1월 - 이공제비 분실하여 다시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05년 - 이공제비 기존 비석이 깨져 새로 추가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8년 5월 30일 - 이공제비및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이공제비및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이서공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천동로 117[상동 182-3]지도보기
성격 송덕비
관련 인물 이서
재질 황백색 화강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72cm[높이]|37cm[폭]|10cm[두께]
소유자 대구광역시
관리자 대구광역시 수성구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이공제비및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판관 이서의 치적을 기리고자 세운 송덕비.

[개설]

이공제비(李公隄碑)는 정조 때 대구판관이었던 이서(李溆)[1728~1794]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頌德碑)이다. 현재 이공제비는 1899년(고종 36)에 세운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와 나란히 서 있으며,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와 함께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건립 경위]

이서가 부임하기 이전, 대구분지를 관통하여 흐르던 하천은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주었는데, 이서대구판관으로 부임하여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재를 털어 1778년(정조 2)에 물길을 돌려 새로이 제방을 축조하였다. 이에 감동한 주민들이 이서의 공적을 기려 제방 이름을 ‘이공제(李公隄)’라 하고 같은 해인 1778년 8월에 ‘이공제비’라는 이름으로 송덕비를 세웠다. 이후에 이공제비를 잃어버려 1797년 1월에 다시 세우고, 1805년(순조 5)에 비석 일부가 깨어져 다른 비를 옆에 다시 세움으로써 두 개의 비석이 현재까지 전한다.

[위치]

이공제비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82-3 이서공원 내에 있다.

[형태]

이공제비는 두 개인데, 옛날 비각이 무너지면서 비신이 부러진 비석과 이후 다시 세운 비석이 나란히 있다. 재질은 황백색 화강석이고, 다시 세운 비석의 비신은 높이 72㎝, 폭 37㎝ 두께 10㎝의 크기이다. 한 채의 비각 안에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와 나란히 서 있다.

[현황]

이공제비는 이서공원 안에 있어서 대구광역시 공원관리공단에서 보호하고 있다. 대구 지역의 둑이나 기슭을 무너지지 않게 지켜 주는 호안신(護岸神)으로 받들어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이서공원 비각 앞에서 제사를 올리며 수해가 없기를 기원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공제비는 조선 후기 대구 지역민에게 큰 피해를 주던 신천의 홍수를 다스린 판관 이서의 공적을 기린 비석이며, 대구 지역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금석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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