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처눌 행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722
한자 孫處訥 行狀
영어공식명칭 Records Of A Deceased Son-Cheonul's Life
이칭/별칭 「계동선생전공행록」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3년 - 「행장」 저자 손처눌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4년 - 「행장」 저자 손처눌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59년 - 『계동집』 간행
배경 지역 계동선생유적비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지도보기
성격 행록|행장
작가 손처눌

[정의]

조선 후기 대구의 대표적인 유학자 손처눌이 지은 전경창의 행장.

[개설]

「손처눌 행장」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조호익(曺好益)[1545~1609]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이 발발하자 대구의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관직은 검열·정언에 이르렀다. 대구광역시의 연경서원(硏經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계동집(溪東集)』이 있다.

[구성]

「손처눌 행장」은 전형적인 행록(行錄)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호(字號), 세계(世系), 관작(官爵), 업적, 언행, 당대의 품평 등이 서술되어 있다.

[내용]

「손처눌 행장」의 서두에 자호·관향(貫鄕)·세계를 차례대로 서술하고, 관작을 연대순으로 나열하였다. 특히 전경창이 상소한 국계변무(國系辯誣)에 관한 일화를 자세하게 서술하여 전경창의 강직함과 사리분별의 명확함을 드러내었다. 이어서 자손에 대한 기록, 국가 계통을 바로잡는 일에 공로를 인정받아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된 사정과 추증된 전말을 서술하였다. 본문에서는 전경창의 성정(性情)과 학문적 성취, 평소의 품행 등을 서술하며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결어(結語)에서는 당대를 대표하는 정구·서사원·장현광의 전경창에 대한 품평을 더하고, 행장을 지은 과정을 말하며 글을 마무리하였다.

[특징]

「손처눌 행장」전경창의 기본 정보에 대하여서 행장(行狀)의 전형적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의 대부분을 상세한 일화로 제시하였다. 손처눌『모당집(慕堂集)』에서는 「계동선생전공행록(溪東先生全公行錄)」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손처눌 행장」은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행장이 역사에서 관찬 사료로서의 지위는 지니지 못하겠지만 관찬 사료를 보조하는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손처눌 행장」의 기본 정보 제시는 간략·명료하고, 일화 제시는 상술하여 일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국계변무에 관한 전경창의 상소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과 대조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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